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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돈으로 건물 짓고 예산 대신 갖다 쓰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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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노동부가 세우려는 '잡월드(Job World)'는 고용보험기금을 취지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대표적 사례다. 노동부는 예산보다 손쉽게 쓸 수 있다는 이유로 고용보험기금을 이용해 너무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고용보험기금을 실업자 지원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기준 8조4000억원에 이르는 고용보험기금은 노동부 입장에서 '도깨비 방망이'같은 존재다.

노동부가 의욕적으로 벌이고 있는 고용지원사업의 재원은 대부분 이 기금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기금은 노동부 자금줄? =2010년 경기도 분당에 들어설 예정인 '잡월드'는 연건평 1만 평 규모의 초대형 직업체험 전시관이다. 건설비 2127억원은 전액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당한다. 이 같은 규모의 직업체험 전시관은 세계적으로 일본과 독일밖에 없다. 노동부 관계자는 "일본도 잡월드 건설을 위해 한국의 고용보험기금과 유사한 기금을 사용했다"며 "직업세계에 대한 교육도 넓게 보면 고용안정 사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4월 6일 대통령 앞에서 '국가고용지원서비스 혁신 보고회'를 열었다. 이날 보고회에선 중소기업 근로자 대학 학비 지원, 학습계좌제 도입, 수강지원금 지원 확대, 고용안정센터 원스톱서비스 기능 강화 등 의욕적인 계획들이 발표됐다.

이 계획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투입되는 돈은 무려 5조원. 노동부의 예산규모(올해 8200억원)로는 도저히 추진하기가 어려운 일이지만 이 역시 전액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해 가능했다.

출산휴가 급여 등 모성보호사업에도 지난해 기금이 600억원가량 들어갔다.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한 분야이긴 하지만 기금 설치 취지에 맞지 않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예산을 충당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기금이 쌓여 있는 것을 믿고 수요 예측을 하지 않은 채 사업비를 과다계상하는 경우도 있다. 감사원은 고용안정사업의 경우 사업주가 선호하지 않는 사업인데도 사업비를 지나치게 많이 책정해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추진한 27개 단위사업의 사업비 2조1883억원 중 33%인 7286억원을 집행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퇴직 예정 근로자들의 전직을 돕기 위한 전직지원 장려금의 경우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비 534억원 중 11억원(2.1%)만 집행됐다.

◆ 기금관리 전문기구 만들어야=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용보험기금도 국민연금처럼 별도의 운용위원회를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와 사업자 대표가 참여하는 고용보험전문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통해 기금 예.결산을 심의하고 있지만 노동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별도의 관리기구를 통해 고용안정 사업이나 직업능력개발 사업 중 기금의 성격에 맞지 않는 사업은 예산에서 직접 지원하거나 다른 기금에서 충당하도록 사업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감사원이 지적했듯 외환위기로 실업자가 넘쳐날 때 책정된 현행 보험료를 낮출 필요가 있다.

경총 관계자는 "기금이 남아도는 불합리를 바로잡기 위해선 보험료율을 실업률에 맞춰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변동보험료율 체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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