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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그들만의 비밀'로… '대외비' 가치 없는 문서도 공개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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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찰청이 만든 비밀문서 중 일반문서로 재분류돼 국민이 볼 수 있는 문서의 목록을 공개 바람'.(중앙일보)

'재분류된 문서는 현재까지 없음. 분류된 문서가 없으므로 공개 및 비공개 문서도 없음'.(경찰청)

정부 기관의 비밀문서 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본지가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이런 답변을 내놨다. 정부의 비밀주의가 여전하다. 비밀문서 대부분이 상당 기간이 지나도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고 '그들만의 비밀'이 되고 있다. 정부 문서는 크게 5개 등급(1.2.3급비밀, 대외비, 일반문서)으로 나뉜다. 보안업무규정(대통령령) 등에 따르면 대외비 이상의 비공개 문서는 매년 두 차례 재분류를 검토하게 돼 있다. '재분류'란 비밀 등급을 낮추거나 일반문서로 바꿔 비밀을 해제하는 등의 절차다. 비밀문서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급적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라는 취지다. 경찰청이 비밀문서를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적이 없다면 정보공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셈이다.

◆ 시늉만 내는 비밀 해제=본지가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비밀기록 생산 현황'에 따르면 통일부는 2002년 904건의 비밀문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통일부에 대한 본지의 정보공개 청구 결과 이 문서 중 현재까지 비밀이 해제돼 일반문서로 분류된 건 6건(0.7%)뿐이었다. 국방부도 2002년에만 542건을 비밀로 지정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최근 4년간 일반문서로 바꿔 보유하고 있는 문서는 6건에 불과했다. 비밀 해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한 경찰청은 2001년 3827건(지방경찰청 포함시 3만6648건), 2002년 2097건(3만6998건)의 비밀을 지정했다고 국가기록원에 통보했다. 비밀문서를 양산하면서도 자체 재분류 실적은 0%인 셈이다. 일반문서로 풀렸다고 국민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부처는 비밀 해제된 일반문서들조차 대부분 비공개 문서로 관리하고 있다.

반면 미국 국가기록청이 2004년 부시 대통령에게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지난 한 해 동안 검토 대상 문서의 56.8%를 비밀에서 해제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해제 실적도 27.1%에 달했다.

◆ 비밀문서 관리 제각각="일을 맡고 보니 기록 관리 수준이 엉망이더라. 전임자에게 인수받은 사항도 거의 없고…. 솔직히 징계당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다." 중앙부처에서 문서관리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의 하소연이다. 정부의 비밀문서 관리는 부처마다 제각각이다. 주요 부처에 대한 본지의 정보공개 청구 결과 비밀문서 재분류 실적이 파악된 부처(문화관광부.외교통상부 등)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정보통신부.건설교통부 등)도 있었다. 비밀이 해제된 일반문서 목록을 문화부.외교부.건교부 등은 공개했으나 과학기술부 등은 "조사 중"이라고만 했다.

◆ 비밀 지정도 남발=각 부처가 비밀로서 가치가 없는 것까지 비밀로 분류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가 비밀로 지정했다가 푸는 문서는 2000년 이후 매년 5만~7만건. 다른 부처와 달리 비밀 해제에 적극적인 듯 보이지만 그만큼 비밀문서도 양산하고 있다. 실제 외교부는 업무 특성상 매년 10만건 이상을 비밀문서로 지정했다가 정기적으로 풀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각 부처가 3급비밀로 지정했던 문서 중엔 ▶차관과 출입기자 간담회(2000년.통일부)▶고이즈미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2003년.외교부) 등 언론에 곧바로 보도됐던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 법령은 비밀을 남발하지 않게 하고 있으나 실상은 달랐다.

◆ 시민단체, 국가정보원 상대 소송 채비=국정원은 각 기관으로부터 매년 비밀기록 생산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정부 각 부처가 비밀문서를 얼마나 만들어 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비밀문서 생산 및 보유 현황 등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정보 역량이 노출되면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보 공개 운동을 펼쳐온 참여연대는 이에 반발, 국정원을 상대로 비밀 현황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미국은 국가 문서 전체의 등급별 비밀 현황 등이 담긴 대통령 보고서까지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김성탁.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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