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내사 반대 안하나 선의의 피해자 생길 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 당국이 탈북자 100여 명을 간첩 및 위장귀순 혐의로 내사 중임이 밝혀진 데 대해 탈북자 단체들은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특히 일각의 문제점이 자칫 탈북자 사회 전체의 문제로 비춰질 것을 걱정했다.

◆ "탈북자를 모두 간첩으로 보지 말라"=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은 3일 오후 남대문 인근 숭의동지회 사무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이해영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6700명의 탈북자 사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간첩이 숨어 있을 수 있다"며 "탈북자 사회가 모두 간첩인 양 알려져서도 안 되고 선의의 피해자가 나와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내사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나 정부나 관계 당국 등이 신중하게 대응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혐의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 무고한 탈북자들이 주변의 근거 없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탈북자 간첩혐의 내사 사실을 부인하지도, 내부 문건의 존재에 대해 확인해 주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위장귀순이나 간첩혐의 탈북자 문제가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반신반의했다. 이 때문에 탈북자단체 대표들은 중앙일보를 항의방문했다.

그러나 관련 문건의 존재를 확인한 뒤 김주석 숭의동지회장은 "탈북자 사이에 간첩이 혹 끼어 있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잡을 것"이라며 "관계당국이 탈북자 간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준다면 수사에 협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해 필요하다는 탈북자 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문건의 해당 부분을 탈북자 단체 간부들이 열람토록 했다.

◆ 쉽지 않은 탈북자 간첩 내사=내사와 관련, 관계당국은 지난해 2월 귀순한 탈북자에게서 간첩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에 위장귀순한 다른 탈북자의 구체적인 인적사항까지 입수했지만 아직 구체적 혐의를 확인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복수여권으로 제3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데다 현지에서 북측과 접촉하는 징후 등을 포착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보기관 출신 요원들의 귀순이 많아진 것도 부담이다. 당국은 국가안전보위부 등 북한 공안기관 출신자 귀순자가 88명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북한 공안기관 출신 탈북자는 "북.중 국경지역에서 탈북자 문제 등을 다루는 요원들의 경우 외부정보를 많이 접하다 보니 한국행을 결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우리 전체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