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피자속 삼각대에 이런 깊은 뜻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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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디자인이 만든 세상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문은실 옮김
생각의 나무, 340쪽, 1만2000원

부엌칼은 주로 식사 준비에 쓰이지만 주인에게 들킨 좀도둑 손에 들어가면 범죄용 흉기로 둔갑한다. 그렇다고 식칼 끝을 뭉툭하게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뜨거운 피자 한가운데 꽂혀 있는 흰 삼각대는 상자 안에서 이리저리 쏠리거나 녹아내리는 치즈 때문에 피자가 눌어붙은 것을 막아주는 고마운 물건이다. 흔히 버리는 이 소품을 어떤 이는 뒤집어 놓고 계란 같은 구형을 올려놓는 데 쓰거나, 겹쳐놓으면 안 좋은 재료를 분리시키는 용도로 쓴다. 의자 디자이너 찰스 마운트는 패스트푸드 식당의 의자가 충족해야 할 두 가지 조건으로 2층에서 내던졌는데도 부서지지 않을 것과 손님이 너무 오래 앉아 있지 않을 만큼 적당히 불편할 것을 든다. 디자인은 이처럼 시시콜콜 '선택과 타협의 예술'이다. 디자인은 우리의 나날에 너무나 촘촘하게 배어들어서 누구도 디자인에서 도망칠 수 없다.

미국의 공학 칼럼니스트 헨리 페트로스키(듀크대 토목공학 및 역사학 석좌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디자인한다"고 주장하는 디자인 해설가다. 계단 층계 수는 왜 홀수인가, 전화기와 계산기의 번호판은 어떤 까닭으로 배치 순서가 거꾸로인가, 이쑤시개처럼 생긴 나뭇가지에 불과했던 칫솔은 어떻게 곡선미 넘치는 날렵한 형태로 변했는가 등 생활 속에서 태어나고 진화한 디자인 얘기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디자인이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시시각각 변한다.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면서 페트로스키는 한마디한다. "그럼 당신이 디자인해 보든가!"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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