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린 삼성, 돌아볼 때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그동안 삼성은 세계의 넘버 원이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돌아볼 때도 됐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의 한국투자포럼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황 행장은 1일 뉴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삼성 사장단이 삼성 공화국론 등 삼성의 독주를 둘러싼 비판여론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데 대해 "고대 사건(이건희 회장의 고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장에서 고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사건)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마도 90년대에 고대사건을 겪었다면 섭섭하다는 반응이었겠지만 이제는 좀더 사회에 기여하고 책임있는 기업이 되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결국 좋은 이야기"라고 밝혔다.

또 "삼성 CEO와 각료직 제의가 동시에 들어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황 행장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장관을 맡으라고 한다면 안 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그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세계적 규모로 키웠고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었던 진대제 장관은 예외적인 경우지만 삼성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정부에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황 행장은 재벌그룹 경영자 출신의 장단점에 대한 질문에 "여러 계열사의 장점만을 교육받을 수 있고 큰 조직에서 넓은 시야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이지만 삼성의 경우 구조조정본부가 대외업무를 대신 해주다 보니 외풍에 약한 것이 흠"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삼성에서 나와 은행장을 맡고 보니 인사와 대출청탁은 없었지만 언론의 외풍이 가장 심하고 국회 쪽도 아직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행장은 노조 역시 어려운 상대라면서 취임직후 누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지를 두고 노조와 신경전을 벌였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황 행장은 내년 중 매각이 예정된 LG카드를 국내자본이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LG카드의 출자전환에 참여했던 채권단과 무임승차한 다른 업체들을 똑같이 대접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여론이 채권단 내에 있다"며 "1천만 명이 넘는 LG카드의 고객 정보를 외국업체에 통째로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 행장은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LG카드를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돼 매각 입찰에 참여하고 싶고, 지난해 2조원의 이익을 내 인수여력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은행이 외국에 통째로 넘어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인) 4%의 지분을 갖는 국내자본이 연합세력을 형성해 인수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