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크 '한류' 세네 … 한국팀 오지 못할까 안절부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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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두고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애를 태웠다고 한다. 지난달 초 안디잔에서 발생한 유혈 소요사태가 빌미가 돼 경기장소가 제3국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불안한) 타슈켄트에서 경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자 대통령실(우리의 청와대)까지 나섰다"고 문하영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1일(한국시간)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전했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경기 장소를 절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을 오지 못하게 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대사관에도 장소 변경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경기 장소가 바뀔 경우 안디잔 사태의 배경인 우즈베키스탄의 빈곤한 정치.경제 상황이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란 걱정이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월드컵이라는 세계 축구축제가 갖는 힘,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월드컵 예선 경기를, 그것도 한국이라는 나라와 자기 땅에서 치르는 큰 이벤트를 놓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우즈-대우자동차(대우자동차 현지법인), 갑을방직 등 100여 개 한국 기업이 현지 경제 활성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또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파견된 산업연수생 1만5000명이 한 해에 보내주는 돈도 1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문화적인 한류 열풍도 역시 거세다. 우즈베키스탄 국영 TV에서 지난해부터 방영한 '겨울연가'는 시청률이 60%에 달했고, 그런 높은 인기 때문에 최근까지 네 번이나 재방영을 했다고 한다. 문 대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미국.러시아 다음 가는 3위입니다.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준상과 유진(겨울연가 남녀 주인공 배용준.최지우)이 사는 꿈과 희망의 나라'지요"라고 전했다. 그러니 한국 축구대표팀이 오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태'라는 얘기다. 한국이 월드컵 4강 진출국임을 잘 알고, 경외감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한다.

1일 도착한 한국 선수들이 오후에 타슈켄트 시내 폴리스스타디움에서 훈련을 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현지 시민 50여 명이 몰려와 구경을 했다. 그들은 훈련이 끝난 뒤 우리 선수들에게 사인 요청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했다. 특히 유럽에서 유명한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에게 열광적으로 접근했다.

타슈켄트=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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