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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돼지 기록 35% 확보 … 데이터로 농·축산물 값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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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외산 제품을 대체할 국산‘모돈(어미돼지) 자동 급이기’를 내놓은 박흔동 이지팜 대표. 어미돼지의 성장 단계와 체중에 따라 사료량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이지팜 시설 장비는 회사가 구축한 ‘피그플랜(Pig plan)’ 프로그램으로 관리된다. [강정현 기자]

해마다, 철마다 널을 뛰는 농·축·수산물 가격에 농민들은 속수무책이다. 생산량과 수요를 시기마다 정확히 예측하는 ‘마법’은 없을까. 농업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수급을 예측하고 경영에 반영하는, 이른바 ‘데이터농업’의 실현을 꿈꾸는 사업가가 있다. 국내 최초 농업 전문 정보기술(IT)솔루션 기업 ‘이지팜(ezFarm)’의 박흔동(44) 대표다.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지팜은 농업 관련 분야에서는 인지도가 꽤 높은 14년차 중소기업이다. 95명의 직원들이 연매출 약 100억원을 올리고 있다. 처음에는 학내 벤처였다. 농업 정보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에 주목한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의 최영찬(58) 교수가 1993년 농업정보체계실을 개설한 것이 출발점이다. 당시 연구실에 속한 농대 대학원생들이 떠듬떠듬 코딩을 배워 축산 농가의 경영관리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농가에 인터넷 망도 없던 시절이라 콤팩트디스크(CD)에 프로그램을 담아 가가호호 방문해 전달하고 교육해야 했다.

 2000년 최 교수가 연구실을 벤처기업으로 전환해 전산전문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박 대표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후 농촌의 생활협동조합 사업을 진행하다가 은사인 최 교수의 권유로 이지팜 창업 단계부터 직원으로 참여했다.

 “정보화로 농가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창업 이념만으로는 회사가 생존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 사용료를 받을 수도 없던 터라 농가에는 무료로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사료회사와 농업 관련 기관 홈페이지를 구축해 수익을 냈다.

그러다 2004년 부산경남양돈농협의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맡은 것이 회사 성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돼지 생산에서 도축·가공·판매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통합시스템을 만드는 사업으로 수주 금액만 20억원이 넘었다. 당시 연매출 20억원 남짓의 영세 기업인 이지팜에겐 도약의 기회였다.

 사실 창업 초기부터 양돈 농가를 돌며 프로그램을 보급한 이지팜에게는 매우 ‘유리한 시험’이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완수한 덕분에 “작지만 경쟁력 있는 회사”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정부 농업 부처나 관련 기관의 수주가 이어지면서 굵직한 사업을 도맡아 했다.

 “농촌 현장 실정은 물론 농업 전반에 훤하다는 점이 이지팜의 강점이죠. 대기업 SI업체가 정부의 육종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못하겠다고 두 손 들고 포기한 걸 이지팜이 해낸 적도 있죠. 생물의 가계도를 그리는 작업이라 농업 지식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농가 소득을 높이려면 직거래 채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박 대표는 2001년부터 회사에서 농산물 쇼핑몰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경기사이버장터’는 이지팜이 2001년 만들어 지금까지 위탁 운영을 해오고 있는 ‘대표 작품’이다. 시스템의 완성도는 물론 농민들의 만족도도 높아 다른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벤치마킹할 정도다. 당시만 해도 농업인들이 온라인 직거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터라 회사 직원들이 주문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객 응대는 어떻게 할지 일일이 교육을 해주고 다녔다.

 그 와중에도 직거래에 일찍 눈뜬 농민들이 쇼핑몰을 활용해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을 보면 박 대표는 자기 일처럼 뿌듯하다.“여주의 한 양봉업자 할아버지는 경기사이버장터에 제품을 올리고 난 후 매출이 세배나 늘어 이제는 어엿한 기업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의뢰해 양봉원 자체 쇼핑몰을 만들기도 했죠. 농가도 살고, 저희 사업 일거리도 늘어난 경우에요.”

 최근 이지팜은 오픈마켓·소셜커머스에 입점해 직거래 쇼핑몰에서 호응을 얻은 제품을 대행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에 익숙하지 않은 농민들 대신 판로를 넓혀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농가에 온라인 판매 관련 컨설팅도 제공하며 사업 모델을 다각화 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박 대표는 잠시 학교로 ‘외유’를 떠나기도 했다. 전산과 정보기술( IT) 기술 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느낀 탓이다. 한국정보통신대학원(ICU. 현재 KAIST와 통합)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밟고 최영찬 교수 밑에서 농업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다시 이지팜에 합류해 2013년 9월 대표직을 맡았다.

 박 대표가 취임 이후 회사의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데이터 농업’이다. 생산관리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전산시스템을 구축해온 이지팜에는 방대한 양의 농업 관련 데이터가 축적됐다. 대표적인 것이 ‘피그플랜’. 설립 초창기부터 양돈 농가에 보급해온 이 생산경영관리 프로그램이 지금은 전국 모돈(어미돼지)의 35%의 기록을 모을 정도로 상용화됐다. 현재 900여개 농가가 매달 5만원의 요금을 내고 사용한다.

 그런데 피그플랜에 집계된 각종 생산 데이터를 들여다 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수급을 예측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당장 최영찬 교수님 연구실에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수급 예측 모델을 완성해 달라고 의뢰했다.

 “국내 농가가 영세하다 보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것이 늘 약점이었습니다. 이지팜이 축적한 정보를 가공해 분석 모델을 구축한다면 수급을 예측해 양돈 거래 시장 움직임에 미리 대응할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생산관리가 해마다 요동치는 농·축산물 가격을 잡아 주는 거죠.”

 이지팜은 최근 양돈사업에도 직접 발을 들였다. 회사 개발자 출신 직원이 경상남도 하동에 내려가 양돈사업을 시작한 것에 이지팜도 자금 일부를 투자했다. 회사의 관리시스템이 실제 농가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실험해보고 상세 데이터를 수집할 예정이다. 정확한 데이터 해석을 위해 수의사를 채용하고 직원 7명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시키는 등 연구개발 투자도 늘려나가고 있다. IT 기업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파격적인 시도에 대해 박 대표는 “농업에 미친 대표 때문에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며 웃어 보였다.

 2007년부터 시작한 기자재 제조 사업도 작년부터 완제품을 내고 있다. 모돈의 몸무게·젖량에 따라 자동으로 사료 급여량을 조절하는 급이기, 체중에 따라 출하할 돼지를 선별하는 돈선별기 등 관련 설비를 직접 생산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일부 기업화된 양돈농가가 선진국에서 수입한 장비를 쓰고 있었는데 가격도 비싼데다 수리와 점검이 어려워 사용 농가에서 불편을 겪었다.

이지팜 제품은 외산 제품 대비 10~20% 저렴한 가격에 피그플랜 프로그램과 연동해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피그플랜은 돈사에서 직접 입력이 가능하도록 모바일 시스템도 구축하는 등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왔다.

 “최근 양돈농가도 기업화·대형화되면서 규모를 키우는 추세고, 귀농하는 베이비붐 세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학적이고 자동화된 농업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데이터농업이 상용화 되는 날도 그리 머지 않았다고 봅니다. 대학과 정부가 농업 빅데이터 전문가를 육성한다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겠죠.”

글=박미소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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