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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개천절은 개천절답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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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27면

10월 1일 국군의 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돼 옛날만은 못하지만 10월은 여전히 국경일의 달이다. 개천절과 한글날!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이 얽혀 있는 기념일이니, 10월은 맞는 심정은 반갑고 보내는 마음은 섭섭하다. 그런데 나는 역사 관련 국경일 의식을 볼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유대인의 역사 기념의식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 국경일 행사를 보면 대체로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관련자 내지 대통령 기념사 정도로 획일화돼 있다. 형식만 보아서는 그것이 삼일절 의전인지 제헌절 예식인지 구분이 어렵다. 8·15 광복절도 그렇고, 개천절도 그렇고, 한글날도 그렇다. 의전 예식의 특징이 없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예식마다 그것을 통해 과거 역사적 사건을 더듬어 후대가 그 체험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씩 파스카 예식을 치를 때에는 약 3300년 전에 있었던 조상들의 이집트 탈출 경험을 상기시켜 준다. 그날은 일단 반찬이 다르다. 쓴 풀, 쓴 나물을 먹는다. 자연히 각 가정의 아이들은 투정을 부린다.

“오늘 반찬이 왜 이래요?”
“녀석아, 우리 조상님들은 이렇게 고생하면서 이집트에서 나왔단다. 이날을 잊지 말자고 오늘은 이걸 먹는 거야.”

또 무교병을 먹는다. 누룩 없이 그냥 밀가루로 만든 부풀리지 않은 맛 없는 빵, 그것을 먹는다.

“아, 또 이거야. 맛 없어요.”
“이 녀석! 그땐 빵을 부풀릴 겨를이 없어 이걸 먹었단다. 감사히 먹으렴.”

그다음 양을 잡아 그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는 예절을 거행하면서, 이집트 탈출 당시 급히 양을 잡고 문설주에 피를 바르던 일들을 부모가 자녀에게 생생히 다 이야기해 주면, 아이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건을 반드시 기억하게 돼 있다.

또 하나 초막절을 예로 들어 보자. 이날은 광야 40년의 고생스러운 생활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래서 일부러 성인식을 치른 남자들이 초막을 짓고, 야외 생활을 한다.

“왜 그러죠?”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이처럼 힘들게 텐트 생활을 했던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이렇게 부모는 자녀에게 그런 상징 행위들 속에 담겨 있는 뜻을 풀이해 준다. 그럼으로써 역사를 회상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만약 우리가 이런 지혜를 가지고 8·15 광복절을 기념하면서 생생한 예식을 만들었다면, 아마 우리 자녀들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다 잊었다. 8·15가 무엇이고 6·25가 무엇인지, 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과거다.

우리도 8·15 그날을 예로 들어, 보리밥만 먹는다든가 하면 어떨까. 그래놓고 아이들이 “오늘 왜 이걸 먹어요”라고 질문하면 “일제 강점기에는 이걸 먹고 살았단다. 그만큼 착취당해서 배를 곯아야 했어”라고 얘기해 주면 교육이 저절로 되지 않겠는가.

개천절도 그렇다. 국기에 대한 경례만 할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쑥과 마늘을 가지고 무슨 반찬을 만들어서 먹든지, 쑥떡을 먹든지 하면 얼마나 깊은 해학과 뜻이 깃든 축제가 되겠는가. 또 한글날에 다양한 ‘가나다라’ 선물을 주고받는 상상을 해본다면 불경스러운 발상일까.

선조들이 온갖 시련을 견디면서 깨달은 값진 교훈을 우리 후손에게 실효적으로 대물림되는 축제적 교육의 날로서 국경일을 기렸으면 좋겠다.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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