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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식 창조경제…한국판 '실리콘 밸리'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크레모텍은 스마트폰용 프로젝터를 만드는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이다. 삼성전자 출신인 이 회사 김성수 대표는 2007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용 프로젝터를 상용화해 대한민국 10대 기술상을 받았다.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상업화에 실패하는 등 굴곡도 많았다. 중국 현지에서 프로젝터를 출시했다가 시련을 겪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것은 SK텔레콤의 ‘브라보! 리스타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45세 이상의 창업 유경험자들의 재활을 돕는 걸 목표로 한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의 1기 참여 기업인으로 선정된 그는 SK텔레콤이 가진 특허 9건은 물론 창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고가의 장비들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1년여 만인 현재 크레모텍은 19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재기에 성공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8억원이다. 현재 SK텔레콤 융합기술원과 공동으로 HD급 화질을 낼 수 있는 레이저 프로젝터 개발에 한창이다. 김 대표는 “SK그룹은 단순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창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원해줘 다시 한 번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며 “새롭게 개발한 프로젝터를 통해 국내 디지털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일궈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보유 특허 창업자가 활용

SK그룹이 스타트업 도우미로 나섰다. SK그룹이 가진 ICT(정보통신기술)역량을 활용해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이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는 계획이다. 창조경제 실현을 돕는 일종의 ‘키다리 아저씨’다.
그 첫 단추는 10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 내에 문을 연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다. SK그룹은 일찍부터 대전에 주목했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와 대전산업단지 등에 1600여개의 기업과 기관, 14개 정부 출연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충남대를 비롯한 19개 대학이 포진해 인적자원이 풍부함에도 ‘대박’ 아이템을 내지 못한 지역이다.

SK그룹 측은 10일 “대전 일대는 한국의 실리콘벨리로 부상할 수 있는 인적ㆍ물적 여건을 갖췄지만, 이런 다양한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지 못해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며 “SK그룹이 그간 축적한 노하우와 물적 지원을 바탕으로 대전을 미국의 실리콘 밸리 못지 않은 곳으로 개발해 SK식의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설명했다.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센터)는 이런 계획의 전진기지다. 센터는 1788㎡(542평) 규모로 막연한 아이디어를 사업화로 이끌어주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스페이스’를 비롯해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공간을 갖췄다. 디자인 씽킹 스페이스는 SK그룹 내 창업 전문가들이 상주하면서 예비 창업자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주는 일종의 상담 공간이다.

센터의 핵심은 기술사업화 장터다. 대전 인근 출연연구원과 SK그룹이 보유한 기술을 창업자들이 무료 내지는 실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술사업화 장터의 목적이다.

올해 말까지 2400건의 특허(출연연구소 2000건ㆍSK그룹 관계사 400건)가 장터에 등록된다. 이후로도 매년 1100건 이상의 유망 기술을 이곳에 등재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을 비롯한 그룹 내 계열사들은 어떤 특허기술이 어느 출연연구소에서 출연됐는지를 효과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제공해 특허의 검색과 활용 편의성을 높이기로 했다.

센터 내부엔 대전 지역 창업기업을 위한 입주공간도 마련됐다. 현재 클라우드 소싱 기반 블랙박스 서비스 개발업체인 엠투브를 비롯한 벤처 10곳의 입주가 확정됐다. 당초 180개 업체가 입주를 희망해 입주 경쟁률은 18대1에 달했다. SK텔레콤 CSV실 장형일 매니저는 "대전센터 내 창업기업 입주공간은 10개월간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소정의 창업자금 지원도 이뤄진다"며 "창업 지원에 대한 깊이와 폭이 국내 다른 어떤 창업센터보다 우수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공간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전센터를 위해 총 450억원의 창업지원펀드(이하 대전펀드)가 구성돼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 대전펀드와는 별도로 최태원(54) SK그룹 회장이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기부한 금액 중 일부인 104억원을 활용한 소셜벤처 펀드도 창업자를 기다리고 있다.

혁신센터 인근에는 사이언스 빌리지가 신축돼 예비 창업자들의 업무 편의를 돕기로 했다. 사이언스 빌리지 신축에만 총 490억원(SK그룹은 250억원 투자)이 투자된다. 내년에 착공해 2016년 완공 예정인 사이언스 빌리지에는 사무실과 스마트 서비스 기술 전시장ㆍ사물인터넷 테스트 베드 등이 들어선다.

창조 경제로 잘사는 농촌 만든다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해 잘사는 농촌을 만들 수 없을까.’

세종창조마을시범사업은 이 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SK그룹은 ‘농작물 기획생산과 근거리 소비’를 골자로 하는 ‘스마트 로컬 푸드 시스템’의 전도사로 나섰다. 한 마디로 농작물 생산에서 유통, 판매까지 ICT기술을 통해 스마트화한단 얘기다. ‘로컬 푸드 시스템’은 경작된 농산물이 근거리(반경 5~10㎞ 내외)에서 즉각 소비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목표다.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받고, 생산자는 안정적인 수요처가 생기는 것이다. 원동력은 정확한 수요 예측과 탄력적인 농산물 공급이다.

이를 위해 SK그룹은 ICT기술을 활용해 어떤 작물이 인기가 있을지 사전에 예측하고, 농민들에게 어떤 농작물을 얼만큼 키워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농가입장에선 한 해 한 가지 농작물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수박ㆍ참외 등 5~6가지 작물을 일년 내내 키우고 팔 수 있어 고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농가들이 로컬 푸드 시스템에 참여토록 독려하는 일은 세종특별자치시와 농업기술센터가 맡았다.
세종창조마을시범사업은 SK그룹과 지자체 등이 힘을 합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인 셈이다. 성과도 뚜렷하다. 지난해부터 로컬 푸드 시스템을 도입한 전북 완주군(1500여 농가 참여)의 경우 참여 농가의 평균 소득이 전년보다 100% 가까이 늘어났다. 세종창조마을시범사업이 제대로 이뤄지면 젊은 층의 귀농도 늘어날 것이라고 SK그룹이 기대하는 이유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농산물별 출하시기를 조절하는 일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인근 농가가 이번 주에 참외를 많이 내놓는다고 하면 이를 사전에 파악해 농가 별로 공급 시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다. 자신이 내놓은 농작물이 어느 지역에서 얼만큼 팔리고 있는지 손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로컬 푸드 관련 사회적 기업인 행복ICT의 김석경 상임이사는 “현재 우리나라 전체 농가의 50% 이상이 노인들이 농사를 짓는 고령농이면서 생산량이 많지 않은 소농인 경우가 많아 중ㆍ대농 중심의 농업 거래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체계화된 생산을 통해 소농들도 연중 꾸준한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면 자연스레 농촌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농촌 기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물인터넷 기술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농업관련 시설을 원격 제어하고, 지능형 영상분석을 통해 농작물과 농기계 도난을 막아 ‘힘들지 않은’ 농업이 가능토록 한다는 목표다.

세종 대전 =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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