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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모로코|요란한 왕의 행차… 백여후궁이 모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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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가 모로코 최대의 도시로 세계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것은 한여름의 저녁나절이었다.
막 바다로 곤두박길 하는 붉은 태양이 낙조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이 장관을 보고서야 비로소 카사블랑카가 왜 소설과 영화에 그리 자주 등장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하얀집이 회색으로>
공항을 빠져나온 택시운전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시가지를 한바퀴 돌면서 카사블랑카란 「하얀집」이란 뜻이며, 15세기에 이 도시를 건설할 포르투칼 사람이 붙인 이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카사블랑카는 그 이름에 어울리게 남국적인 경서가 감돌았다. 「하얀집」이 더러, 눈에 띄긴했지만, 페인트칠을 안한 탓인지 내 눈에는 모두 회색으로 보였다. 주민들의 얼굴빛도 유럽과 아프리카를 반반씩 닮아서 인지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에 가까왔다.
카사블랑카는 20종 안팎의 고층건물이 즐비한 근대적인 넓은 거리와 전형적인 미로의 거리인 옛 메디나로 나뉘어 있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 그렇게도 정력적이던 운보가 저녁도 안들고 곯아 떨어졌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운보가 창가에서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그의 곁에는 몇장의 작품이 놓여있다.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모로코여인의 호동 그런 눈이 퍽 인상적이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모로코 사람의 부산한 모습도 스케치북에 담겨 있었다.
운보는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 듯『게리·쿠퍼」가 주연한 「외인부대」란 영화를 봤느냐』고 물었다. 나는「외인부대」는 못 봤어도 「잉그리드·버그만」이 주연한 「카사블랑카」는 봤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장·가방」이 주연한「피에로」도 봤느냐』고 다그쳤다.
『아침부터 무슨 뚱딴지같은 영화타령이냐』고 했더니, 운보는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이 세가지 영화가 모두 모로코를 무대로 한 것』이라고 실명했다. 그는 『그중에서도「외인부대」가 모로코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영화』라고 덧붙였다.
오전에는 무공에서 이곳에 나와있는 윤광덕씨의 안내를 받아 시가지를 돌아봤다. 가로수가 무성했다. 우리나라 유도화 같은 나무가 길가에 즐비하다. 울굿불굿한 온갖 꽃이 경염하듯 피어있었다. 어린이 머리통 만한 가지며, 어른손 만한 고추가 열대과일 속에 섞여있다.
우리는 모로코의 옛날시장과 현대시장도 둘러봤다. 운보는 시장에서 옷가지며 기념품이 될만한 여러가지 물건을 샀다.
운보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상술용 무색케 했다.
무엇이든 정가의 반씩 뚝뚝 잘라 불렀다. 나는 너무 깎는 게 아닌가 싶어 옆구리을 꾹꾹 찔렀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일방통행이다.
그리고는 물건용 싼값에 샀다며 이건 알라신이 자기에게 내린 행운이라고 좋아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아랍권의 상인들은 물건값을 반씩 후려쳐도 『좋습니다. 팔지요. 밑지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나는 동양사람이 좋아요. 미국인에게는 이런 값으론 절대 안팔지만 당신한테는 깎고 깎아서 팔겠읍니다』고 너스레를 띤다는 것이다. 운보는 여행을 많이 해서인지 이만한 상식은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길가에 차를 멈추고 모로코사람들의 특징있는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았다.모로코도 이집트나 마찬가지로 여행객을 따라다니면서 돈달라고 손벌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도 시장바닥을 누비고 다녀서인지 배가 고팠다. 한국인이 쿠크로 있는 음식점에 가서 그에게 특별부탁해 고기볶음과 생선찌개를 얻어먹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화랑을 찾았다. 카사블랑카에는 모두 3개의 화랑이 있는데 여름기간이어서 문을 닫고 영업은 하지 않았다. 중앙지에 있는 사바도스화랑만 마침 일이 있어 문을 열었기에 구경할 수 있었다. 이 화랑에서 우리는 모로코 민속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여러점 보았다.
운보는 그림을 보고 저린 민속놀이하는 곳에 가자고 부추겼다. 10년전에 죽은 이 나라 화가의 4호짜리 그림에 3천5백달러의 값이 불어진걸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저녁때가 되어서 해변으로 나갔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단장중인 왕궁도 보고, 박람회장도 보았다. 수족관을 거쳐 안파해안에 있는 바닷물 풀에 갔다.
운보는 여기와서야 아까 화랑에서 본 말타고 총쏘는 민속놀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곳에 당장 스케치하러 가자고 성화였다.
모로코사람에게 물었더니, 그건 마라케시 지방에서 5∼6월에 하는 민속놀이인데 지금은 때도 늦었지만 너무 멀어서 적어도 3∼4일은 잡아야한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어 우리는 저녁을 먹고 카사블랑카 제일의 변화가 프랑스광장으로 갔다. 때마침 라마단(회교국가에서 여름동안 새벽3시부터 저녁7시까지 금식하는 것) 기간이어서 밤이 되자 원주민들이 이곳으로 쏟아져 나왔다.

<신들린 듯 서필놀려>
여기서 우리는 모로코 민속의 편인이나마 주울 수 있었다.
술김에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윽고 벨리 댄스가 시작되었다. 붉은빛·푸른빛 조명이 명멸하는 어둠침침한 곳에서 운보는 신들린듯 획획 내갈겨 스케치북용 메웠다. 사람의 얼굴조차 구별하기 힘든 희미한 조명아래에서 운보는 한석봉어머니 떡썰듯 색까지 칠해가면서 스케치에 열중했다.
호텔에 돌아와 밝은 불빛에 보니 메모한 내 글씨는 삐뚤삐뚤한데 운보의 그림은 가지런했다. 문득 예술이건, 기술이건 연륜을 속일 수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은 모로코 수도인 라바트에서 이 나라 임금님(하산2세)의 행차를 만났다.
1백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납시는데 여간 요란스럽지 않았다. 「엘리자베드」영국여왕의 선상초청리셉션에도 2시간씩이나 늦게 가는 사람이고 보면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54세의 왕이 길가다가도 예쁜 여자를 보면 후궁으로 맞아들일 수 있다니 회교국치고는 퍽 개방적인 것 같았다.
이 나라에는 이혼의 자유도 보장돼 있다. 단 이혼하면 아이들은 여자가 맡아야 한단다.
모로코에선 왕의 아기를 정실밖에 낳을 수 없다. 후궁은 아예 애를 갖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래서 왕자는 2명뿐이다. 왕의 친척, 왕의 친지가 아니면 이 나라에선 권·부을 누릴 수 없다는 모로코국민의 불평을 듣고 나는 공연히 왕의 얼굴이 든 l디르함 짜리 동전용 만지작거렸다.

<글=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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