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기업인 닮은꼴, 대중과 파트너십 쌓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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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꼽는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 직업외교관 시절 거주한 워싱턴 다음으로 오래 지낸 곳이 서울이다. [강정현 기자]

“보잉은 한국에서 제품만 팔고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세대를 이어가며 파트너십을 맺고, 이 사회의 일부가 되고 싶다.”

 에릭 존(54) 보잉코리아 사장이 7일 본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파트너십’이었다. ‘우정’과 ‘관계’란 단어도 많이 나왔다. 그는 미 국무부 내에서 한국통으로 손꼽히던 외교관 출신이다.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1983년 국무부에 들어간 이래 동아시아 지역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보잉코리아 신임 사장으로 선임된 건 지난 5월이다. 새로운 경력을 한국에서 시작하는 이유를 묻자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워싱턴을 제외하면 서울만큼 오래 머문 곳도 없다. 한국에서만 10년 가까이 생활했다”고 덧붙였다.

 국무부 시절 그의 첫 부임지는 부산의 미국 총영사관이었다. 84~85년 부영사로 근무했다. 이후에도 세 차례나 더 주한 미 대사관에서 일한 뒤 국무부 한국 담당 과장과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지냈다.

 존 사장은 “처음 서울 안국동과 세종로를 걸을 때 거의 모든 남성이 베이지색 코트에 하얀 셔츠, 비슷한 색상의 넥타이를 맨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30년 사이 사람들의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따뜻하고 성실한 국민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인 지난해엔 한국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올 초에 마무리된 9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협상에서 미국 쪽 수석대표를 맡은 게 존 사장이었다.

잊지 못할 순간을 묻자 그는 “모든 것이 끝났을 때”라며 웃었다. 이어 “한·미 모두 포기해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많은 어려운 협상이었다”며 “상대방 정부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했다. 자국 입장만 생각했다면 우린 아직도 협상장에 앉아있을 것”이라고 되돌아봤다.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자 “카운터파트인 황준국 대사(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를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이 협상은 본질적으로 굉장히 논쟁적이고 언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존 사장은 “끊임없이 대중에게 손을 뻗고 관계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외교관과 기업인은 유사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잉코리아의 장기적인 전략은 성장을 거듭하는 한국 기업들과 보다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특징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관계’다. 보잉코리아도 그 일부가 돼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외교가에 소문이 자자한 애처가다. 부인 얘기를 꺼내자 “우리가 결혼한 지가 28.9년”이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애처가다웠다.

존 사장은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그녀”라고 말했다.

글=유지혜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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