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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는 남북이 주도해야 모처럼의 기회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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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지만 서울에는 때아닌 봄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4일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의 황병서·최용해·김양건이 방문하면서다. 북한 실세라는 세 사람의 방문으로 남북대화 재개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돼 긴장완화·비핵화·관계개선이라는 한반도 평화 3종 세트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반도 문제는 이미 남북 문제를 넘어선 국제적인 사안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천안함 사건 이후 발동한 5·24 조치를 해제하려고 해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설득은 물론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유엔 제재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상당한 대가도 치를 수 있는 일본은 대북외교의 주요 변수다. 과거 혈맹이던 북한과 이제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며 수교 65주년을 맞는 올해 아무런 행사도 치르지 않고 있는 중국도 커다란 요인이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이번 10·4 인천 남북회담에 대해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고 다만 반응을 떠보려는 정도로 보는 담담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 외교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도쿄의 한 소식통은 이번 인천회담에 대해 일본은 북·일 납치자 문제 재조사에 혹시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그동안 북한이 한국·미국·중국과 모두 척지고 지내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고개를 내밀 수 있는 유일한 대화 파트너로서 납치자 문제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인천회담으로 분위기가 반전돼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번 인천회담을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북한의 적극적인 외교공세의 일환으로 풀이했다. 북한 이수용 외상의 유엔 등 방문과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의 유럽 순방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자 대남 카드를 집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내심 당황하는 눈치다. 이 소식통은 “중국은 지금처럼 북·중 관계가 소원한 상태에서 남북 간 대화국면이 조성될 경우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대북 영향력이 감소할까 우려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오래전에 기획한 것이 아니냐”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도 있다고 한다. 중국 신화사는 7일 이런 분위기를 정리해 “한반도가 대화와 대립의 공존 시대로 들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론 남북의 만남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속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워싱턴의 여러 전문가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고위층 대표단을 인천에 보낸 이유는 여전히 안갯속”이라고 말했다. 클링너는 “북한이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을 반복해서 위반하다 받게 된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보려는 것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비공식적 2인자인 황병서를 보낸 것에 대해 “김정은이 장기간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음으로써 생긴 건강이상설이나 체제 불안정설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전적인 대북 해석이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국제사회가 튼튼한 결속으로 대북 제재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북한이 접근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매파인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려면 미국과 손잡고 미국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대화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이렇듯 자국의 국익이 중심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도 여기서 철저하게 국익을 챙겨야 한다. 북한과는 대립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하고, 미·일과는 협력 속에서도 일정 부분 의견을 절충하면서 견제해야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모처럼의 대화 기회를 살려 한반도 평화와 안정으로 가는 물꼬를 틀 수 있다. 현명한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