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원 칼럼

한·미 정상회담 위험과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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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앞으로 열흘 남짓 있으면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 열린다. 처음에는 미측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정상회담이 거론되면서 한국 측이 더 적극적으로 나아간 것같이 보인다.

사실 이 시기에 한.미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물론 잘못되는 경우를 생각하면 위험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 한.미 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 침묵만 지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안위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한국 측의 생각을 설명해 주고 동시에 미국의 최고책임자에게서 미측의 생각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2003년 5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부시와의 첫 만남에서 앞으로 한국과 미국은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했고, 이어 같은 해 10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 방콕에서는 제2차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주로 북핵과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번에 워싱턴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 문제와 한.미동맹의 미래가 주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 문제는 지금 가장 나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한.미 간에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의견일치를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해 미국 정부 안에서도 아직 의견 통일이 안 되고 있는 인상을 버릴 수 없다는 데 있다. 말로는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것과 약속하는 것 사이에는 아직도 상당한 불균형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한국 정부도 바로 이 같은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워싱턴의 태도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북 유화정책 이외의 다른 어떤 가능성도 고려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 측의 대북유화(appeasement) 정책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바로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근본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 측에 옵션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협상을 통한 해결을 추구한다면 적어도 북한의 손익계산에서 설득력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동기 부여를 시도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동기부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북한이 타협을 거부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태도 변화를 강요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북한에 알려줘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의 장래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협의과정에서 있을 수 있었던 오해와 갈등을 모두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솔직하게 말해 동맹의 미래에 관한 협의는 자칫 잘못하면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추상적 토론을 유발함으로써 지금 있지도 않은 문제들을 상정해 놓고 불필요한 원칙을 주장, 현존하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줄 안다. 지나치게 모든 상황을 명백하게 정의하려 하는 지적 야심은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의 우연성과 복합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어리석은 자세다.

한.미 관계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역사의 물결을 타고 흘러가면서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것이다. 50년 전 한.미동맹이 태어날 때 그 누구도 한국과 미국의 동맹체제 안에서 한국이 그처럼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것처럼, 앞으로 50년 뒤의 한.미동맹도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김경원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