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미루는 인상…2백만불 증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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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백만달러-. 빳빳한 1백달러짜리 2만장이 증발했다.
우선은 2백만달러를 재빨리 우리돈으로 환산, 무려 14억원이란 엄청난 액수에 모두들 입을 벌렸고 다음엔 신출귀몰한 절취수법에 모두들경악했다.
하루종일 번돈 3만여원을 강탈하려고 택시운전사를 무참히 살해하거나 행인의 뒤통수를 벽들로 치고 핸드백속의 몇천원을 빼앗아 달아나는 무저막지하지만 어쩌면 단순하기도한 범죄 양상에 익숙해온 우리네들로선 가히 국제적이고 미국적이란 말이 안나올 수 없다.
추리소실이나 프랑스 갱영화속에서 보았던 허구와 과장에 찬 장면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사건과 유사한 내용의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은 『범인들이 지금쯤은 카리브해나 아카풀코쯤에서 미녀를 끼고 샴페인을 마실것』이라느니 『분배를 놓고 저희들끼리 살인극이 벌어질것』이라는등 장안의 화제는 2백만달러에 쏠려있다.
AP·로이더등 세계4대통신들이 일제히 이사건을 보도하고 범행지가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는데서 뉴욕시경과 연방수사국 지능반의 움직임도 활발하다는 소식이다.
도둑맞은 2백만달러는 보험회사가 뒤집어 쓰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자국기에 싣고와서보니 없어진 것이 꺼림직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수사는 의외로 조용하고 책임전가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범행이 미국 현지에서 이루어졌고 내국인의 관련 사실이 없다면 이를 확증하는 우리측의 수사결과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다.
역시 이번 경우에도 우리경찰은 고질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발생 12일만에 보도된 신문기사가 바로 이 사건에관한 경찰최고위층에 대한 첫보고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일선경찰에서는 피해자인 은행측의 보안요청과 우리측의 협의 사실이나 손해가 없었기 때문에「소극적인 수사」를 폈다고 궁색한 변명이다.
범죄척결과 진실발견이 목적인 수사에 소극적이고 적극적이고는 말의 장난일뿐이다. 오히려 국민들에겐 상부에 보고조차않고 끌어안고 뭉기적거리는게「소극적인 수사」라는 인상만심어줄 우려가 있다. 집에 화재가 났을 때 다행히 보험에 들어 판상이 되었다고해서 과연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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