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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온 냄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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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살 먹은 남자’는 미국 코미디언 멜 브룩스가 1960년대 TV 코미디 시리즈에서 연기한 유명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통해 현대 세계에서 가장 걱정스럽게 생각되는 문제가 뭔지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는 세계 평화나 개인적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건 바로 냄새다. 개인의 고유한 냄새가 사라져가고 있다. 요즘은 신체의 각 부위에 뿌리는 향이 개발됐다. 겨드랑이 밑, 콧속, 가랑이 등등. 그래서 이제 냄새로는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 그건 사는 게 아니다.”

‘2000살 먹은 남자’는 통찰력이 뛰어나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옛날에 모세와 예수(“가게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사지 않은 깡마른 사내”) 같은 인물들을 거부하고 “필이라는 남자”를 숭배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인공 향의 만연에 대한 우려는 그가 드물게 통찰력을 발휘한 사례로 입증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컴퓨터화된 소리와 영상의 방송을 당연하게 여겨 왔다. 하지만 냄새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송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터무니없게 들린다. 그래서 내가 친구들에게 센티(Scentee, 스마트폰으로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소형 기기)를 손에 넣었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은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센티는 그렇게 대단한 기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플라스틱으로 된 공 모양의 접속장치로 크기는 방울 토마토보다 약간 작으며 스마트폰의 오디오 소켓에 연결시켜 쓴다. 관련 앱을 다운 받으면 기기가 독자적으로 혹은 사용자의 조작을 통해 활성화된다. 또 다른 센티 소유자가 전화를 걸 때도 활성화될 수 있다. 센티는 푸른 빛을 내면서 전자담배의 증기처럼 은은한 향을 내뿜는다. 향기의 종류는 기기에 장착된 화학물질 카트리지 속에 담긴 내용물에 따라 달라진다. 베이컨, 소 갈비살, 버터를 넣은 감자요리 등의 향도 넣을 수 있다.

센티는 에이드리언 데이비드 척(42)의 연구를 참조해 일본에서 제조됐다. 척은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혼합현실 연구소(Mixed Reality Lab) 소장을 지낸 과학자로 현재 런던 시티대의 퍼베이시브 컴퓨팅(Pervasive Computing, 생활 속으로 구석구석 파고드는 컴퓨터 관련 기술) 교수다.

센티는 영국에서 아직 신기하고 낯선 기기다. 지난 6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설명회에 참석한 어린이 다수가 척에게 낙타 방귀 냄새 등 광범위한 향을 개발하면 매출이 상당히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기 과학자

시티대의 한 작은 실험실에서 척을 만났다. 호감 가는 인상에 감정 표현이 분명한 그는 온통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연구과학자라기보다는 노련한 록 기타리스트처럼 보인다. 박사 과정 학생 두 명이 그와 함께 있었다. 독일 태생의 마리우스 브라운과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조던 티웰이다.

“으깬 감자 향을 로딩했을 때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척에게 말했다. (나 자신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달 위를 걸었던 남자, 세스나 경비행기 한 대를 모조리 먹어 치운 남자 등 별의별 사람을 다 인터뷰했지만 이런 대화는 과거의 어떤 경우 못지 않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왜 중요한가? 실제로 센티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나?” 내가 물었다.

“물론 있다. 전에 도쿄의 게이오대에서 일할 때 음식 미디어에 관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업인 친구 츠보시 고쿠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우리 과학자들은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회사는 상품을 개발했다.” 그렇게 해서 향을 내뿜는 최초의 모바일 기기가 탄생했다고 척이 말했다. “센티는 수익성 있는 회사다. 일본에서 한 달에 수천 대를 판매한다.”

척은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말레이시아인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호주에서 전기공학자로 학계에 첫 발을 들여놨다. 그가 그렇게 제한적이고 전통적인 학문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되지만 말이다. 그에게선 엄격함과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가 묘하게 어우러져 나타난다. “센티가 재미있는 기기라는 건 알겠지만 반짝 관심을 끄는 장치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 내가 물었다.

마리우스 브라운이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산 세바스티앙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무가리츠에서 찍은 비디오를 틀었다. 무가리츠의 주방장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즈(영국의 음식점 전문 잡지 레스토랑에서 2014년 현재 세계 6위 요리사로 꼽혔다)는 센티의 발명가들과 공동작업을 해 왔다. 그는 손님들을 놀라게 하기로 유명하다. 손님들에게 그날 메뉴에 대한 사전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20가지 요리 하나하나가 사람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며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기억을 끄집어낸다.

무가리츠 레스토랑의 비디오는 손님들이 전통적인 첫 번째 코스를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손님 각자가 막자사발로 허브와 양념을 갈아 수프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자리에 가지 못한 미래의 고객은 센티 앱이 장착된 스마트폰을 들고 막자사발의 이미지가 나타난 전화기의 디스플레이를 돌리면서 가는 동작을 시뮬레이션 한다. 재료가 다 갈아진 것처럼 보일 때 센티가 후추와 참깨, 사프란 향을 내뿜는다. “그 레스토랑의 음식 일부를 가상으로 체험하는 과정”이라고 척이 말했다.

척은 또 식품업체 크래프트를 소유한 육류가공업체 오스카 메이어와 손잡고 베이컨 향을 내뿜는 자명종 시계를 제작했다. 오스카 메이어는 이런 혁신이 ‘수요가 발명을 낳는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야심 찬 홍보 비디오를 제작했다. 척의 실험실에도 그 비디오가 있다. 한 젊은 여자가 공중에서 빗발처럼 쏟아지는 베이컨 조각들을 피하면서 드라이 아이스 더미 속을 걸어간다. 가슴이 깊게 파이고 속이 비치는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이런 험한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자신의 몸통을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걱을 휘두른다.

관능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영화감독 켄 러셀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거부했을 법한 에로틱한 이미지들을 배경으로 남자 음성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칠흑 같은 한밤중에 콧구멍 속의 북극성이 당신을 깨운다.” 이 비디오는 여자가 센티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와 “베이컨 향을 내뿜는 자명종 시계를 원하세요?” 라는 말소리에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질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아니요”라고 답할 것 같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진 티스메이드(Teasmade, 시간을 맞춰 놓으면 자동으로 차를 끓여주는 기계)는 적어도 진짜 차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만약 베이컨 자명종 시계를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면 센티를 통해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니 다행이다.

센티는 하드웨어가 비교적 정교한 편이지만 척이 개발한 맛을 자극하는 기기의 시제품은 더 간단하다. 마리우스 브라운이 내게 스프링이 들어 있는 금속 기기 한 쌍을 건넸다. 커다란 빨래집게처럼 보였다. 이 기기는 회로판과 납축전지와 연결돼 있다. 브라운은 “전류가40 밀리암페어밖에 안 된다”고 말하면서 기기의 갈라진 틈을 벌려 내 혀를 그 안에 넣도록 했다.

테이블 앞에 앉아 입을 벌린 채 혀를 기기 안에 넣고 브라운이 스위치를 누르기를 기다렸다. 1940년 코미디 영화 ‘싱가포르 가는 길’에서 밥 호프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 아셨지?” 혀끝에 전류가 흐르면서 레몬처럼 톡 쏘는 맛이 느껴졌다. 척은 자신의 연구팀이 온도와 전류의 세기를 다르게 조절한 여러 조합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섯 가지 맛 중 신맛, 짠맛, 쓴맛, 단맛 네 가지를 복제할 수 있다. (다섯 번째 맛인 감칠맛은 1908년에 공식적으로 발견됐다.)

향기의 멋진 신세계

척은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에서 컴퓨터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싱가포르 혼합현실 연구소에서 연구원과 학생 100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을 이끌었다. 그곳에서 그는 3차원 인체모형의 활동기록을 혼합현실 환경에 삽입하는 기술로 호평 받았다. 이 기술은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사용한 홀로그램 효과에 비견돼 왔다. 인터넷으로 촉감을 전송하는 척의 작업은 현재 손가락에 끼워진 플라스틱 반지를 이용해 진행 중이다.

이 반지의 시제품은 크기가 매우 작고 볼품이 없어 매력적인 액세서리로 착각을 일으킬 일은 없을 듯하다. 똑 같은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반지를 누르면 상대방의 반지에 진동이 느껴진다. 상대방이 옆방에 있어도 되고 무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면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 섬에 있어도 가능하다. 실종 어린이와 가족을 연결해주는 신호 체계로 사용될 수 있다. 아니면 연구팀의 말대로 요양시설에 입원한 환자 중 다른 감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을 연결하는 신호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이 반지는 “사람들이 서로 가상 포옹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기를 만들려는 척의 야망을 향한 첫 단계다.

향기와 맛을 혼합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개념은 새삼스럽지 않다. 1884년 프랑스 작가 J K 위스망스가 발표한 소설 ‘거꾸로(A Rebours)’의 주인공은 ‘입 오르간(mouth organ)’을 갖고 있다. 건반이 술통으로 이어지는 관에 연결돼 있어서 연주자는 일종의 알코올 교향곡을 작곡하고 소비할 수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호텔 방들엔 향기 오르간이 있다. 이런 기기들을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내기는 다소 어렵다.

1930년대에 미국계 스위스인 과학자 한스 라우베는 영화관 안에 향기를 내뿜는 기술을 개발했다. 1950년대 말에는 이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방식이 시험됐다. 스멜오비전(Smell-o-Vision)이라고 불리는 방식은 영화 사운드트랙에 맞춰 그 장면에 적합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도록 고안됐다. 마이클 토드 2세가 1960년 제작한 ‘미스터리의 향기(Scent of Mystery)’(피터 로어,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가 가장 유명한 사례다.

라우베가 이 기술을 개발한 의도는 영화 시사회에서 보잘것없는 조연이 단번에 주목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관의 열악한 환기시설 탓에 관객들은 잡다한 향이 뒤섞인 냄새를 맡아야 했다. 장미, 해초, 와인, 박하, 구두약, 코르다이트 폭약 등 온갖 냄새가 뒤섞였다. 일부 관객은 이 자극적인 냄새 때문에 겁에 질리거나 메스꺼움을 호소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후각에 대한 이 전면적인 공격은 도료희석제와 싸구려 향수가 뒤섞인 듯한 지독한 냄새로 우리의 코를 괴롭힌다. 그리고 장의사를 떠올리는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잔향을 남긴다.”

디지털 향기 기술의 역사는 20년이 채 안 됐다. 1999년 디지센츠(DigiScents)라는 회사가 e메일을 열었을 때 몇 종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고안된 기기를 선보였다. 또 도쿄와 샌디에이고, 텔아비브 등지의 몇몇 회사들이 입체 음향 시스템에 장착 가능한 형태의 상업성 있는 향기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근접했다고 알려졌다.

향기 전화

하버드대 아이디어번역학 교수 데이비드 A 에드워즈가 설립한 파리의 디자인 센터 르 라보라투아르는 오폰 듀오(oPhone DUO)를 곧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르 라보라투아르는 이 기기가 궁극적으로 30만 가지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폰 듀오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향기를 혼합하는 기능을 지닌 복잡한 향기 모뎀이다. 한번에 한 가지 향기만 내뿜을 수 있는 센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생김새는 모바일폰이라기보다 치위생사가 쓰는 도구처럼 보이며 제품은 2015년 봄에 출시된다.

컴퓨터화된 향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질문 한 가지를 에드워즈에게 물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 에드워즈는 “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흥미로운 분야가 있다”고 말했다. “냄새나 향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환경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그 예다.”

“폐기물 처리 사업 같은 것을 말하나?”

“커피나 꽃 관련 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고 에드워즈는 설명했다. “커피숍에 가면 사람들은 주문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커피 향을 맡게 된다.” 그는 인체의 이런 기능이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바리스타와의 대화라곤 “우유와 설탕을 넣을까요?” 정도가 고작인 영국의 카페 문화에선 낯설게 들리는 말이다.

“디지털 향기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에드워즈는 말했다. “냄새는 트위터 메시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코가 있는 이유다. 우리 투자자 중 한 명은 개를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애완견이 감상할 수 있는 영화도 나온다. 예를 들면 개는 주인이 없는 동안 새에 관한 영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럴 때 개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냄새를 이용해 이종 간 의사전달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됐다.”

사람과 개가 선호하는 냄새의 차이는 엄청나다. 사람은 장미와 파출리, 베티베르 등 식물의 향을 좋아하는 반면 개는 여우의 배설물 냄새를 좋아한다. 난 이 특정 분야의 정보 고속도로가 일방통행로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란다.

최근 로스앤젤레스 ‘예술과 후각 연구소’(IAO)에서 열린 오폰 설명회 참석자들은 이 연구소의 설립자인 사스키아 윌슨-브라운의 말대로 이 기기가 “매우 실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데이비드는 전화기로 페리에 생수 캔 사진 한 장을 찍은 다음 앱을 이용해 거기에 네 갖지 향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오노트(oNote)’를 기기로 전송했다. 그랬더니 약 1분 동안 향이 뿜어져 나왔다. 각각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었다.”

위대한 코

향수는 사용자에게 심리적인 효과를 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거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기도 하며 최음제 같은 효과를 내는 향수도 있다. 세크레시옹 마니피크(사진)에서는 땀과 혈액이 뒤섞인 냄새가 난다.

미각과 후각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그것들이 다른 감각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냄새의 느낌은 전뇌(forebrain)에 있는 후신경구(olfactory bulb)의 자극을 통해 일어난다.

척이 내게 두개골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냄새에 대해서는 인체의 기본 수용기가 평상시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눈과 귀는 진동수를 측정한다. 하지만 코는 센서와 더 유사하다. 소리는 데이터의 80%를 제거해도 제대로 들리지만 냄새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해야 제대로 맡을 수 있다. 맛을 느낄 때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이 따른다.”

척의 임무는 “감각을 가상세계에 합병시키는 것”이다. “인터넷은 데스크톱 뒤편으로부터 맛과 촉감, 냄새의 물리적 세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난 센티를 들고 런던의 전문 향수점 ‘레 상퇴르’의 최고 기록보관 담당자 제임스 크레이븐을 찾아갔다. 향수업계에서 최고의 ‘향기 전문가(nose)’로 꼽히는 크레이븐은 고객에게 고급 향수에서 나는 복잡한 향을 소개하는 데 익숙하다. 현존하는 최고의 향수 제조업자 올리비에 크리드 등 향수 장인의 제품을 주로 취급한다.

크리드가 운영하는 향수업체 하우스 오브 크리드는 1760년 그의 조상들에 의해 설립됐다. 이 회사는 빅토리아 여왕, 윈스턴 처칠, 프랭크 시내트라, 험프리 보가트, 마이클 잭슨, 찰스 왕세자, 미셸 오바마,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코스텔로 등 쟁쟁한 인물들을 고객으로 맞았다. (“처음 크리드의 향수를 뿌렸을 때를 분명히 기억한다”고 코스텔로가 내게 말했다. “그 전에는 거리를 지날 때 낯선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서 ‘향수 냄새 정말 좋은데요’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센티에 중국식 소갈비 요리 냄새를 로딩하자 크레이븐은 약간 불편해 하는 듯 보였다. 그에게 센티의 성능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포뮬러원(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경주) 우승자에게 우유 배달차의 시운전을 부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투지 있게 사선에 섰다. 첫 번째 향이 그의 ‘콧구멍 속 북극성’을 건드리자 그는 “좋다, 한 번 해보자”라고 말했다. “이건 분명히 고기 냄새”라고 그가 말했다. “이 기기가 내 것인데 부러우냐?”고 내가 물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럽진 않다”고 그가 대답했다. “지금 상태로는 장난감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더 정교하게 발전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아주 흥미롭다.”

복잡한 향 중에 내가 조금이라도 지식을 지니고 있는 향기는 크리드의 향수다. 전에 올리비에 크리드를 몇 번 만났던 덕분이다. “이 좋은 향수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효과를 주는 듯하다”고 내가 말했다. “예를 들어 크리드의 로열 워터(한 병 가격 180파운드)를 뿌리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한 향기 전문가는 내게 그 향수를 뿌리면 ‘갑옷을 입은 듯 든든하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크레이븐이 말했다. “어떤 향은 최음제 같은 효과를 내고 어떤 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어떤 향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레 상퇴르는 다양한 향수를 갖추고 있다. 크레이븐은 ‘세크레시옹 마니피크’라는 이름의 향수를 시향지 위에 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땀과 혈액이 뒤섞인 냄새가 나서 약간 조심스럽다.” (세크레시옹 마니피크의 판매회사 에타 리브르 도랑주는 이 향수에서 “정자와 타액의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야생적이고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크레이븐이 ‘팻 일렉트리션’이라는 이름의 향수 병을 열면서 말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향수 전문가 마이클 도노번은 고티에의 ‘나코틱 비너스’라는 향수를 소개해줬다. 월하향(멕시코 원산의 식물)을 주 원료로 만든 향수다. 멕시코에서는 전통적으로 독신 여성이 월하향을 채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꽃의 에로틱한 성질 때문에 여성들이 들판에서 성폭행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도노번은 나코틱 비너스가 “사무실에 뿌리고 나갈 만한 향수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코틱 비너스는 마이클 보디의 ‘콤플렉스’에 비하면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처녀에 가깝다. “콤플렉스는 매우 자극적이고 강렬하다”고 도노번은 말했다. “머리가 터질 듯한 느낌을 준다. 내겐 마치 두 사람이 호텔 방에서 이틀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고 창문을 열지도 않은 채 땀에 젖은 시트를 뒤집어쓰고 틀어박혀 있을 때 나는 냄새처럼 느껴진다.”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설명이다.

“그런데도 팔리나?”

“잘 팔린다.”

“누가 사나?”

“주로 여성들이다.”

소변과 비스킷

하지만 냄새가(자연적인 것이든 센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화학적으로 조제한 것이든) 사람에게 정말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겸 향수 전문가 애버리 길버트와 이 문제를 논했다. 그는 신경과학을 공부한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길버트의 2008년 저서 ‘일상생활 속 냄새의 과학(What The Nose Knows: The Science of Smell in | 뉴스위크 한국판 201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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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Life)’은 향기의 사회적 역사를 다룬 훌륭한 책이다. 향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사로잡을 만큼 품격있게 쓰여졌다.

“신경해부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시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은 뇌의 시상(thalamus) 부위를 거치기 때문에 감각이 일어날 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게 된다. 하지만 냄새는 시상을 우회한다. 과학자들은 냄새에 대한 뇌의 반응이 실험에서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냄새는 무의식적으로 뇌에 기록되는 듯하다.”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향수를 뿌렸을 때는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내가 길버트에게 말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운전하는 스타일이 달라지듯이 말이다. 바흐의 암울한 푸가를 듣을 때와 ZZ 탑의 록 음악을 들을 때는 확실히 다르다. 냄새가 음악과 다른 점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ZZ 탑의 음악처럼 강렬한 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용한 유추”라고 길버트가 말했다. “나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 그런 효과를 느꼈다. 음악을 크게 틀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확실히 차이가 났다. 내 차에 탔던 사람 여러 명이 그런 말을 했다.”

“영국 시인 존 쿠퍼 클라크의 시 중에 냄새와 관련 된 작품이 있다”고 내가 말했다. ‘갈수록 태산(Things are going to get worse)’이라는 시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질 거요, 간호사/ 난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소/ 내 입 모양은 지갑을 닮아가오, 간호사/ 집에서는 소변과 비스킷 냄새가 나오/

‘소변과 비스킷’이라는 말은 향수에 붙이기에 이상적인 이름은 아닐지 모른다. 래브라도 리트리버(사냥개의 일종) 시장을 겨냥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향이 실험실에서 복제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고 길버트가 말했다. “와인을 마시고 본 소변의 냄새를 원하는지, 보드카를 마시고 본 소변의 냄새

FEATURES / TECHNOLOGY를 원하는지만 알면 된다. 맨체스터 출신인 당신은 축구 관중이 축구장 잔디에 본 소변에서 나는 극도의 악취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엔 축구 팬들이 주차장에서 소변을 보기 때문에 축구장의 소변 냄새가 희미해졌다고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길버트는 또 비스킷의 경우에도 합놉이든 펭귄이든 브랜드만 지정하면 냄새를 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논란이 인다. 작가이자 생물물리학자인 루카 투린은 냄새 분자의 모양이 코의 수용기에 주는 영향을 좌우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입자의 진동성이 냄새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투린이 2008년 자신의 부인 타냐 산체스와 함께 펴낸 ‘향수 가이드 A에서 Z까지(Perfumes: The A-Z Guide)’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카리스마 있고 박식한 그는 향수 과학자 세계에선 다소 고립돼 있다. 연구에서 과학적 과정을 고집하는 루카가 향기에 대한 글을 쓸 때 프랑스 와인 비평가들에게 악명을 안겨준 비교문화적 접근법을 이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떤 경로를 통하든 일단 냄새가 뇌에 도착하면 기억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되는 건 분명하다. 내 개인적인 기억과 연관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만약 어떤 여자가 게를랭의 미츠코 향수와 파리 지하철 역의 냄새, 푸이 퓌메 와인과 벤슨 앤 헤지스 담배의 향이 뒤섞인 냄새(난 이 냄새를 ‘소시에르#101’이라고 부른다)를 풍기며 다가온다면 난 그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여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냄새: 마지막 미개척지

반쯤 잊혀진 냄새는 정서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거의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형 상점에 갔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냄새에 노출된다. 예를 들어 식품점에서는 빵 굽는 냄새나 초콜릿, 또는 커피 원두의 냄새를 풍긴다. 한 유명한 셔츠 상점은 매장에 갓 세탁한 옷에서 나는 냄새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고객에게 영향을 주는 마케팅 수법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척은 자신의 목표가 “냄새를 상점 안에 분사할 뿐 아니라 온라인에 흘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길버트는 “냄새의 디지털화는 공공장소에서 대중을 조종하는 일을 훨씬 더 쉽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요즘은 스멜오비전의 효과적인 버전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다.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마술쇼에서 그런 효과를 성공적으로 사용했다. 1999년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에서 실시된 연구에서는 향기가 카지노 고객의 지출을 평균 45% 증가시킬 수 있다고 드러났다. 현재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카지노는 모두 향기를 이용한 사업 전략을 구사한다.

난 길버트에게 “생물학과 디지털 하드웨어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척의 말이 맞느냐고 물었다. 길버트는 “물론이다”고 대답했다. “현재 나는 에어로믹스라는 실리콘 밸리의 한 신생회사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그 회사는 인간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 400가지 전부를 담게 될 바이오칩을 개발했다. 이 바이오칩은 400종의 수용체 단백질을 스캔해 어떤 종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됐는지를 기록한다. 이 칩은 인간 코 속에 있는 생물학적 수용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성과다.”

“그러면 센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가 물었다.

“이 기기는 날 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고 길버트가 대답했다. “난 후각과 연관된 첨단기술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 기기는 냄새를 한번에 한 가지밖에 로딩할 수 없게 돼 있어서 현재로선 미완성품처럼 보인다.”

“센티의 비전과 기술은 높이 산다”고 길버트는 말을 이었다. “감각을 정보 신호 보내기에 이용한다는 아이디어가 무척 흥미롭다. 예를 들면 양노원이나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식사 시간을 알릴 때 냄새를 이용하면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향기는 상황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도중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정신적 긴장이 점점 고조될 때 향을 강화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하는 게 좋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멜 브룩스의 ‘2000살 먹은 남자’가 옳았다. 장차 후각은 디지털 기술과 연계해 인간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감각이다. “모든 전달의 수단이 거기에 다 있다”고 길버트는 말했다. “적절한 적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건축물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심장박동수를 감지할 수 있는 건물의 설계가 가능하다. 온도조절장치처럼 냄새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할 수도 있다.”

척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센티 같은 것을 제작하기 위한 당신의 연구가 진행돼 온 속도가 너무 빨라서 놀랐는가? 아니면 좀 더 빨리 진행되지 않아 좌절감을 맛 보았나?”

“양쪽 다다.” 척이 대답했다. “난 큰 비전을 갖고 있다. 이런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잘 안다. 은행 업무와는 다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실패가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면 야심 찬 계획이 매우 중요한 연구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버트에게 “냄새의 디지털 전송과 관련해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향후 25년 동안 이뤄지는 일에 사람들이 놀라게 되리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보다 훨씬 더 빠를 수도 있다. 이미 무선으로 조정할 수 있는 향기 기기를 개발했다. 앱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첨단기술과 냄새의 적절한 결합법을 찾아낸다면 그것을 이용한 제품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둘 것이다.”

척은 전세계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감각세계를 디지털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와 보스턴, 파리에서 연구 중인 척의 경쟁자 대다수가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척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냄새의 디지털화와 관련된 첫 번째 경이로운 도약이 애들레이드 출신의 이 작은 남자가 일하는 런던의 소박한 실험실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듯하다.

글=ROBERT CHALMERS 뉴스위크 기자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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