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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병역 면제 골' 쏜 임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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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축구사에 오래 기억될 명장면을 연출한 임창우(22·대전 시티즌·사진). 2부리그의 무명 선수가 연장 종료 직전 터뜨린 골이 한국 남자축구에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겼다. 지난 2일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깜짝 스타가 된 임창우를 3일 서울에서 만났다. 오랜 후보 신세에 지친 그는 군대에서 새출발하려고 지난해 신체검사를 받은 터였다. 그와 19명의 동료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

 - 금메달 축하한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카카오톡이 100개가 넘게 왔다. 결승 후 라커룸은 춤추고 물 뿌리고 난리가 아니었다. 어젯밤 숙소에서 조촐한 자축파티를 했다. ‘진짜 우승 못할 줄 알았다. 서로 불안했지만 내색 안했을 뿐이다’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 공식 득점자는 임창우지만 사실상 이용재(23·나가사키)가 넣은 골인데.

 “골을 넣고 벤치로 달려가니 이미 동료들이 용재와 뒤엉켜 세리머니를 하고 있더라(웃음). 동료들과 숙소에 모여 리플레이를 봤다. 용재 슛이 골라인을 거의 넘어갔고,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이 주어질 수도 있었다. 동료들이 ‘용재 골 아니냐, 해명기사를 꼭 내라’고 하더라(웃음). 용재에게 미안했다.”

 - 북한전 도중 장성혁과 이마를 맞대고 눈싸움을 벌였다.

 “북한 선수들이 안 보이는데서 걷어차고, ‘니들 축구하기 싫으니’ 등 말을 험악하게 했다. 내가 발을 좀 밟은거 같은데 ‘야 이 새끼야’라고 하더라.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고, 무섭게 생겨서 잠깐 주눅이 들었지만, 티내지 않고 맞섰다.”

 - 이번 대회 첫골과 피날레골을 넣었다.

 “청소년대표 시절 중앙수비였는데 국제대회에 나가면 적어도 한 골씩은 넣었다. 3경기 연속골을 넣은 적도 있다. 세트피스 때 감이 온다. 신기하게 공이 생각했던 쪽으로 온다.”

 - 역대 최약체팀이란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스타 플레이어는 없지만 튀는 선수가 없었다. 와일드카드(23세 초과선수) 박주호(27·마인츠), 김신욱(26), 김승규(24·이상 울산) 형들이 잘 이끌어줬다. 특히 주호 형은 청소년 대표 주장 시절부터 무게감이 있었다. 주호 형도 ‘이런 끈끈한 팀은 처음이다. 잊지 못할거다’고 했다.”

 - 이광종 감독은 청소년 시절부터 함께 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 오후 10시 반에 노트북과 휴대폰을 수거하셨다. 밤잠을 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밤 11시 전에 불을 끄고 잤더니 믿고 맡기셨다. 감독님은 쿨하고 터치를 안 한다 .”

 - 울산에서 3년간 거의 벤치만 지켰다.

 “나도 어떻게 힘든 시기를 넘겼는지 모르겠다. 동창 남태희(레퀴야)는 A대표팀까지 뽑혔다. 사실 지난해 경찰청에 지원하려고 신체검사도 받았다. 대전 임대가 결정돼 취소됐다. 아직도 신체검사 결과표를 못 받았다. 난 실력이 부족한 걸 인정하고 뒤에서 조용히 칼을 갈았다.”

 - K리그 챌린지(2부) 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에 선발됐다.

 “내가 못하면 K리그 챌린지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질까 봐 더 열심히 뛰었다. 챌린지가 1부리그와 비교해 개인기나 속도 등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근호 형은 2부리그 상주 소속으로 브라질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다.”

 - 앞으로 목표는.

 “최우선 목표는 대전의 1부리그 승격이다. 이바노비치(첼시)를 좋아한다. 중앙수비를 겸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측면 수비다. 그에 빗대 ‘임바노비치(임창우+이바노비치)’란 칭찬 댓글도 봤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A대표팀이 목표다. 난 공을 잘 차는 선수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선수다. 더 노력해야 한다. 난 2부리거다. 이제 인생 2부가 시작됐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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