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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문정희 시인·한국시인협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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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중략)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 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두 번은 없다’ 중에서

아버지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마당 한가운데 키 큰 감나무를 돌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가는 아버지의 관을 향해 나는 열네 살의 어린 손을 흔들어야 했다. 시가 나에게 다가든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존재! 사라지므로 아름다운 투명한 물방울! 그 후 내가 읽은 모든 시는 그 범주 안에 있다. 내가 쓴 모든 시도 아버지의 관 앞에서 울던 어린 딸의 노래다.

 ‘두 번은 없다’ 이 시를 쓴 폴란드의 여성시인 쉼보르스카는 미당(未堂) 다음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996년 노벨 문학상을 그녀에게 안겨주면서 모차르트처럼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웅장함을 겸비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명징한 언어, 절제된 표현으로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금세기의 거장, 하지만 한없이 수줍은 은둔의 시인이 사는 크라코프를 여행하며 나는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불과 한 시간 남짓에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것을…. 문정희 시인·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