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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알아주는 미식가를 위한 일식 장인의 밥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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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28면

가을철을 맞아 준비한 가이세키 요리. 원래는 하나씩 코스 요리로 나온다. 가을에 맞는 식재료와 장식, 그릇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인 정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고집스럽게 지켜 가는 것, 그리고 뭔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다. 때로는 자기의 전부를 걸기도 한다.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정신이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44> 서울 청담동 ‘아오야마’의 가이세키 요리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곳곳에서 이런 장인 정신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된다.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들이나 장인들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멋진 분들이 많다. 최고의 장애인 신발을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는 분, 고등어 염장하는 일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평생 그 일만 했다는 분 등등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런 분들 덕분에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되었고 진화해 왔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우선 기분이 좋다. 그 열정과 순수함이 주는 에너지가 감사하다. 나의 나태해진 인생에 죽비를 맞는 느낌이 들어서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 분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한다. 천성이 게을러서 제대로 따라 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볼 수는 있으니까.

음식점을 하는 분들 중에도 당연히 장인 정신을 가진 분들이 있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음식을 만들려고 일생을 바쳐 노력해온 분들이다. 그들 이 만들어 내는 음식은 틀림없이 깊이가 있고 맛이 있다. 그래서 한번 알게 되면 오랜 단골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계절마다 두번, 일년에 여덟번 메뉴 교체
서울 청담동에서 ‘아오야마’라고 하는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범순(57)대표도 그 중 한 분이다. 40여 년 동안 일식 요리 외길을 걸어왔다. 유명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오랜 경력을 쌓은 후에 1997년에 자신의 식당을 개업해 직접 요리를 하면서 운영해 오고 있다. 처음 갔다가 그의 대단한 장인 정신에 반해서 벌써 15년이 넘도록 단골이 되었다.

박 대표는 정통 일본요리인 가이세키(かいせき 會席)요리 전문가다. 가이세키 요리는 연회에서 술과 함께 즐기는 정식 코스 요리를 말한다.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 때부터 시작이 된 요리 형식으로 오늘날 일본 요리에서 가장 정통 요리로 꼽힌다. 계절 요리가 중심이어서 계절에 따라 식재료가 바뀌고,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요리를 한다. 음식마다 재료나 요리 방법, 맛 등이 중복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구성한다.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도 계절별로 바꾸고 그릇의 모양과 재질까지 고려하는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제대로 된 일식 요리사라면 자신만의 가이세키 요리를 완성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최대의 꿈이라고 한다.

‘아오야마’에서는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정통 가이세키 요리를 해 오고 있다. 한 계절에 두 번 메뉴를 바꾸는 방식으로 일 년에 여덟 번 메뉴를 바꾸고, 그릇과 실내 장식도 계절 분위기에 맞춘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들여 화려하게 만들어 내는 10가지가 넘는 코스 요리를 먹을 때면 맛있다는 생각을 넘어 황송해 지기까지 한다. 마치 에도시대의 쇼군(將軍)이라도 된듯한 느낌이다.

재료의 맛을 살리고 건강까지 생각해 만드는 요리여서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우리 입맛에는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감을 이용해서 섬세한 맛을 천천히 즐기다 보면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화려·섬세한 정통 일식 요리의 세계
사실 우리나라에는 가이세키 스타일의 요리를 하는 일식집은 꽤 많지만 정통 형식을 모두 갖춘 요리를 하는 곳은 유명 호텔 일식당 외에는 별로 없다. 우선 음식을 만드는 데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좋은 재료를 써야 하기 때문에 원가도 비싸진다. 그래서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느린 템포로 즐겨야 하는 정통 일본 요리 보다는 사시미를 중심으로 한 간단한 형식의 요리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박 대표는 자신의 요리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평생을 바쳐온 일식 요리사로서의 자존심으로 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덕분에 우리들은 정통 제철 일식 요리의 화려하고도 섬세한 세계를 즐길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장인’들의 덕을 보면서 살아간다.

▶아오야마(청산)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2-10 남강빌딩 지하 1층 전화 02-3442-4451. 가이세키 요리 전문이지만 점심때는 스시나 단품 요리도 한다. 일요일도 영업한다. 가이세키 요리 1인분 11~15만원.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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