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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한인] 하와이 커피농장 피터 김 씨

미주중앙

입력

코나커피 열매는 하나씩 손으로 따야 한다. 피터 김 매니저가 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말린 커피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 김 매니저.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삶이 경주라면 뒤처짐을 용납하지 못한다.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완주가 중요하다. 목적이 있기에 인생의 완급을 이해할 수 있다. 잠시 멈춘다 해도 얼마든지 다시 뛸 수 있는 이유다.

미주중앙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하와이 최남단에 위치한 섬 '빅아일랜드'를 찾아갔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코나 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엔 인생을 다시 뛰는 40대 한인들이 있다.

그 땅은 100여 년 전 꿈을 안고 바다를 건넜던 우리의 선조가 사탕수수 밭에서 흘린 눈물과 땀이 배인 곳이다. 이제는 사탕수수 대신 커피 밭에 한인들의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커피 열매가 아메리칸 드림을 맺고 있는 셈이다.

빅아일랜드섬 '마우나 로아(Mauna loa)'산에 위치한 '코나 헤이븐(Kona Haven)' 커피 농장에는 지금 커피 열매가 빨갛게 무르 익고 있다. 그곳에서 열매를 따는 피터 김(46·농장 매니저) 씨를 만났다. 그는 부푼 꿈을 안고 인생을 다시 뛴다.

빅아일랜드 코나=장열 기자ryan@koreadaily.com

지난 15일 하와이 빅아일랜드섬 '코나헤이븐' 커피 농장에서 피터 김 매니저와 인터뷰를 했다. 그와 함께 커피 열매를 따며 다시 뛰는 40대의 인생을 들어봤다. 커피는 인생처럼 손길이 결실을 맺는 작물이었다.

#15일 오전 9시. 목덜미가 벌써 뜨거워진다. 얼굴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혀간다. 온도계를 보니 85도. 습도가 높아서 매우 후덥지근하다.

'코나 헤이븐' 커피 농장은 마우나 로아산 2000피트 지점에 있다. 이곳은 코나에서도 가장 맛있는 커피가 생산된다는 '골든벨트(1600~2000피트)'다. 강렬한 햇볕과 먹구름, 소나기 등이 하루동안 모두 거쳐가는 곳이다.

지금은 피터 김씨의 손길이 점점 빨라지는 때다. 9월은 커피 열매가 익어 본격적으로 빨간색을 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햇볕차단제를 잔뜩 바른 채 김씨를 따라 커피를 따러 나섰다. 열매를 담을 바구니도 목에 걸었다.

"커피 열매는 하나씩 직접 손으로 따야 해요. 손길이 많이 가죠.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정성이 함께 어우러지는게 커피에요."

5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에는 약 3000그루의 나무가 있다. 커피나무는 첫 해엔 열매를 맺지 않는다. 세해, 네해를 거쳐야 서서히 열매를 맺는다. 묵직한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는 작물이다. 김씨에게도 열매를 맺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다. 1983년 미국으로 가족이민을 온 김씨는 대학(UCLA 경제학) 졸업 후 LA지역에서 한인건강정보센터, 부동산 에이전트, 컴퓨터 회사 등 다양한 일을 해왔다.

"커피는 인생이랑 참 비슷한게 많아요. 열매를 맺기 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하죠. 제 과거를 돌아보면 마치 열매가 없는 듯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았죠. 그런데 모든 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열매를 맺어내기 위한 인내의 과정이었어요."

#너무 생소했다. 밭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게다가 수많은 모기와도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모기가 자꾸만 얼굴과 목을 물어 피부가 벌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일조량, 강수량 등이 매일 변하는 고온다습한 지대라서 모기가 매우 많아요. 저도 기자님처럼 이런 환경과 노동이 낯설었죠. 하지만 차츰 손에 익기 시작하더라고요. 땀을 흘리는만큼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인생처럼요…"

LA란 대도시에서 살던 김씨가 농장에 매니저로 처음 온 것은 지난 5월이다. 농장에서 상주하며 바닥일부터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일과는 보통 이른 새벽 잡초 뽑기와 가지치기로 시작된다. 잡초는 커피 나무의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에 거르지 않고 매일 해야 하는 작업이다. 여기저기 흙이 묻은 옷과 챙이 넓은 모자, 고무 장화 등은 그의 일상복이다.

#열매를 따던중 호기심에 껍질을 벗겨 커피 씨 하나를 입에 넣어봤다. 의외로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왜 코나 커피가 명품인지 아세요? 아주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거든요. 첫맛은 달아도 그 안에 다양한 맛이 존재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손길이 결실을 맺는 작물이라 그래요."

손으로 직접 딴 열매는 물에 넣고 하루 정도 기다린다. 물 위에 뜨는 열매는 제거하고 가라앉는 것만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벗은 열매는 다시 물에 넣고 수일동안 표면의 점액을 없애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후 보름에서 한달간 햇빛에 널리 펴서 말리게 되는데 이때 시간을 정해 정기적으로 뒤집어줘야 한다.

코나 커피는 다양한 맛을 내포한다. 특히 커피 본연의 쓴맛과 신맛을 균형있고 적절하게 담아내는게 특징이다.

"이곳은 오전엔 따뜻한 햇볕이, 오후에는 흐릿한 구름과 비가 그늘과 수분을 공급해 커피의 성장을 돕습니다. 사람 인생도 살다보면 꼭 햇살만 받는건 아니잖아요. 비나 먹구름이나 모든게 결국은 삶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살면서 가장 힘든적이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뒤돌아보면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직업이 여러 개였던 것 같아요. 특히 경기가 어려워져서 부동산 일을 그만둬야 했을 땐 너무 힘들었죠. 가장으로서 부담도 있었고요. 그래도 맡은 일은 항상 열심히 했어요. 과거의 경험은 현재 농장일을 하는데 큰 이득이 되고 있죠."

그는 "비영리재단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했던 것은 봉사의 정신, 부동산 에이전트로서의 경력은 비즈니스 마인드, 컴퓨터 회사에서의 일은 조직생활의 경험을 갖추게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러기 아빠'다. 아내와 초등학생인 딸은 현재 LA에서 거주한다. 2~3년 후엔 가족을 모두 이곳으로 데리고 올 계획이다.

"일을 하다 보면 가족이 제일 보고 싶죠. 가족이 이곳에 빨리 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일해야겠죠.(웃음)"

#마우나 로아 산에는 커피농장만 650여개가 있다. 대부분의 농장은 일본계 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극소수의 한인 운영 농장으로서 그들과 경쟁하는 게 쉽지 않지만 꿈은 김씨를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커피나무는 버릴게 하나도 없어요. 씨앗은 커피로, 껍질은 다시 비료가 되거든요. 우리가 인생에서 맛보는 쓴맛의 괴로움도 결국은 어느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경험이에요. 아메리칸드림은 그렇게 완성되는 것 아니겠어요."

빅아일랜드 코나=장열 기자

'커피헤이븐 농장'은?

커피헤이븐 농장(회장 김창학)'은 40대 한인들의 도전 정신으로 운영된다.

현재 매니저로 농장일을 담당하는 피터 김 씨 외에도 코나 헤이븐 조용상(46) 사장과, 김우나(40) 이사가 함께 코나 커피를 이끌게 된다.

우선 조용상 사장은 올해 말 부터 빅아일랜드에서 거주하며 본격적으로 농장일을 총괄할 예정이다.

미국에 온 지 11년째인 조 사장은 달라스 및 휴스턴 쉐라톤 호텔에서 매니저 등 호텔리어로서 근무해왔다. 한국 경력까지 합하면 16년째 '호텔맨'으로 살아왔다.

조 사장은 "35세에 이민와서 어느덧 40대 중반이 됐는데 이젠 커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며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도전할 수 있는 열정에서 비롯되는데 커피라는 도전을 통해 인생에 의미를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우나 이사는 현재 코나 헤이븐 한국 지부를 맡고 있다. 두 달간 농장일을 경험하기 위해 지난 11일 코나로 직접 와서 땀을 흘리고 있다. 김 이사 역시 지난해까지 건축설계 일을 했었다.

김 이사는 "부양가족이 있는 상태에서 40대가 되니까 현실적으로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도전을 꼭 해보고 싶었고 지금은 인생의 꿈을 이루어 가는 즐거운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두 사람에게 '행복'의 의미를 물었다.

조 사장은 "지금의 40대는 도전정신이 많이 사라졌고 윗세대와 비교하면 나약해진 부분이 있다"며 "나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용기가 없어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됐는데, 자기도전과 자기인생을 사는 게 진정한 행복 같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에선 40대가 자녀 교육비부터 큰 돈이 들어가는 시점이라서 뭔가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러다 보면 시기를 놓친다"며 "40대는 성공을 이루는 시기가 아닌, 성공을 향해 나가는 나이임을 인식하고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행복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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