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신약 '카나브' 중남미 고혈압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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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시간) 오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 후맥스 박물관에서 열린 ‘카나브 멕시코 출시 기념 컨퍼런스’. [사진 보령제약]

23일(현지시간) 오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후멕스(JUMAX) 박물관 1층. 보령제약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현지 제품명 아라코)의 출시 기념 컨퍼런스에 멕시코 전역에서 모인 심장·순환기내과 의사들과 제약업계 관계자 100여 명이 모였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온 고혈압 치료제에 대한 정보를 듣기 위해서다. 멕시코 중서부 과달라하라 시립병원에서 온 호세 카릴로 심장내과 의사는 “글로벌 신약보다 효과는 더 좋고, 가격은 더 합리적이라는 얘길 듣고 왔다”고 말했다.

 멕시코 제약기업 스텐달은 카나브를 알리기 위해 멕시코 주요 병원의 전문의 60여 명을 초청했다. 이날 멕시코 내 카나브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한 루이즈 베리에로 멕시코순환기학회 임원(의사)은 “기존 신약들에 비해 카나브의 혈압 조절 효과가 더 좋고 약효의 지속시간도 길었다”며 “진단도, 치료도 잘 안되는 멕시코 고혈압 환자들에게 필요한 신약”이라고 말했다.

 국산 신약 카나브가 중남미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카나브는 스텐달을 통해 멕시코에선 이달부터, 베네수엘라·에콰도르 등 인근 12개국에서는 내년 초부터 병원 처방약으로 판매된다. 국산 신약 21개 중 ‘파머징 마켓’(떠오르는 제약시장)인 중남미에 상륙한 것은 카나브가 처음이다. 카나브의 지난해 매출은 350억원(기술수출료 포함)으로 국산 신약 중 최고 기록을 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보령제약 창업주 김승호(82) 회장은 “외국 약을 가져다 팔기만 하다가 우리 기술로 만든 신약으로 해외에서 인정받으니 뿌듯하다”며 “(카나브를) 글로벌 신약으로 성공시켜 한국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카나브는 보령제약이 개발에 착수한 지 12년 만(2010년)에 개발에 성공했다. 체내 혈압을 높이는 물질(안지오텐신)을 차단해 혈압을 낮추는 ARB 계열 치료제다. ARB는 고혈압 환자 10명 중 5명이 먹는 약이다. 당뇨·고지혈증 치료제와 카나브를 합쳐 복합약을 만들면 시장은 더 커진다. 게다가 고령화와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의 만성질환화는 각국 정부의 고민거리여서 수출길도 넓다. 멕시코만 해도 성인 비만율이 미국(35.3%)에 이은 세계 2위, 고혈압 환자는 인구의 20%(2240만 명)에 달해 탄산음료에 세금을 부과할 정도다.

 이런 점을 감안해 카나브는 수요가 급증하는 중남미·중국·러시아 같은 파머징마켓을 노리고 있다. 카나브는 브라질·중국·러시아에서도 현지 임상시험이 끝나는대로 2년 내 출시될 예정이다.

 최태홍 보령제약 대표는 “2016년에 1400조원 규모가 될 세계 제약시장의 30%는 파머징 마켓”이라며 “파머징을 잡은 후 미국·유럽·일본 등 제약선진국 진출을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국내 제약사들도 중남미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중남미 제약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2%씩 성장하고 있다. 선진 시장 성장률(5%)의 2배 이상이다. 카나브에 이어 LG생명과학은 당뇨병 치료 신약 제미글로를 2016년부터 중남미 23개국에서 출시하고, JW중외제약은 같은 해부터 브라질에 항생제 50억원어치를 매년 수출한다. 정부도 중남미에서 ‘K파마(한국 의약품)’ 붐을 일으키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 올해 7월 식약처는 국내에서 허가된 약은 에콰도르에서 자동으로 승인·출시되도록 에콰도르 정부와 MOU를 맺었다. 멕시코한국대사관에는 연내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중남미 지역사무소가 마련돼 국내 제약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국산 신약의 가치를 약가(건강보험이 정하는 약값)에 제대로 반영해줘야 국산 신약들이 해외에서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국내 약가가 낮으면 처음엔 가격 경쟁력이 되지만 나중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며 “해외 보건당국과 약값 협상에서 한국 약가 이상은 받을 수 없어 기업의 의욕이 꺾어진다”고 지적했다.

멕시코시티=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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