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방황을 때려눕혔다, 맨발의 파이터 김명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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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 우슈 산타(대련종목) 75㎏급에 출전한 김명진(오른쪽)이 결승전에서 하미드 레자 라드바르(이란)를 상대로 발차기 공격을 하고 있다. 김명진은 우슈 산타 종목에서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뉴스1]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 그는 바닥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김명진(26·대전시체육회)이 24일 인천 강화 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우슈 산타 남자 75㎏급 결승에서 이 체급 최강자인 하미드 레자 라드바르(이란)를 2-1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우슈 산타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낸 것은 김명진이 처음이다.

 한자로 ‘무술(武術)’이라 쓰는 우슈의 대련 종목인 산타(散打)는 언뜻 보면 킥복싱과 비슷하다. 헤드기어와 가슴보호대, 글러브를 착용하고 1대1 대결을 펼치는 산타는 펀치, 킥이 가능하고 상대를 걸어 넘어뜨려도 득점이 인정되는 역동적인 무예 종목이다. 경기 중에 상대의 공격을 받고 10초 안에 일어나지 못하면 KO로 처리된다는 점은 종합 격투기와 닮았다. 김명진은 우슈 산타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를 따라 우슈를 접한 뒤 전국대회에서 잇따라 상위권에 들며 기대주로 주목받았다.김명진은 “주변에 우슈라고 하면 무슨 종목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운동했다. 우슈라는 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2010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에 오히려 방황했다. 그는 그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는 체급은 국가당 4개로 제한돼 있었는데 김명진이 속한 75㎏급이 제외된 것이다. 좌절감을 느낀 김명진은 태극마크를 자진 반납했다.

 이 때 김명진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안희만(48) 우슈대표팀 총감독이었다. 안 감독은 “지난해 대표 선발전 당시 김명진이 관중석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 잘할 수 있는데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앉아만 있으면 되겠냐. 한번 해보자’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절치부심한 김명진은 지난 2월 대표 선발전에서 1위에 올라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4년 만의 태극마크가 처음엔 어색했다. 그래도 4년 전의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하루 10시간 넘게 이어진 강도 높은 훈련도 견뎠다. 김명진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렇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생각하면서 견뎌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확정짓고 김명진은 가장 먼저 안 감독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안 감독은 “내 말 잘 들어줘서 고맙다”며 제자의 등을 두드렸다. 김명진은 “감독님이 매일 미트를 잡아주고 같이 훈련을 해주셨는데 금메달로 보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우슈는 이번 대회에서 산타·투로(품새)를 합해 금 2·은 2·동 3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김명진은 “우슈 산타는 UFC, K-1처럼 격투기로 알고 보면 진짜 재밌는 스포츠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슈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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