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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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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타키가 가난한 것을 새삼 깨닫게 되더라도,

이타키는 널 속인 것이 아니다.

풍부한 경험으로 그토록 지혜로워졌으니,

너는 벌써 이타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 카바피스(1863~1933) ‘이타키’ 중에서

이타키는 모험의 왕 오디세우스의 고향이다. 그리스 시인은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고 표류고 항해의 연속이란 속내를 이타키를 빌려 하고 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은 계획 세운 대로 되는 일이 없다. 목적지에서 옆으로 새게 되면 그곳에서 또 다른 목적이 생기고, 전혀 관계없는 곳에 도착한다. 그게 우리 삶이다. 내 경우, 국어 계통론 하려면 역사 비교 언어학 먼저 하라 해서 했고, 그것 제대로 하려면 인도 유럽 역사학이 필수라 해서 전공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유학 가게 됐고 공부 끝나고 귀국했는데 공교롭게도 문화인류학 교수가 됐다. 그러다 신화에 빠졌고, 언어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 무렵 컴퓨터가 발달할 때라 거기 몰두하다가, 인문학의 핵심인 그리스학이 없어서 학과를 만들었고, 문자가 중요하니까 이젠 ‘세계 문자 축제’까지 벌이게 됐다. 자기가 떠나온 곳에 애착을 갖게 되면 안 된다는 내 인생의 시다.

 한글로 전 세계에 내놓을 콘텐트가 뭐가 있느냐, 초라하다. 우리나라 문명의 수준은 한글로 어떤 책이 나오고, 어떤 읽을거리가 생산되고, 어떤 교육이 이뤄지느냐, 지금 거기 신경 쓰는 사람이 너무 없다. 왜 문자축제를 하느냐. 그런 위기를 당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뿐이 아니다. 문자의 생명은 학문이다. 그 학문을 포기하면 그 문자는 쇠퇴하고 그 민족은 힘을 잃게 마련이다. 이번에 전 세계 문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축제를 벌여 한판 놀아보면 좋겠다.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그리스학과 교수·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