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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피아노·운동 시키고 게임 막으면 머리 좋아질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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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01 모차르트 들으면 IQ 올라간다?

(뜻대로 안 되는 자녀 때문에 골치 아픈 40대 엄마) 중2 아들과 초2 딸을 둔 전업주부입니다. 다른 모든 엄마처럼 저 역시 아이들을 똑똑하게 잘 키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관련 책도 열심히 읽습니다. 그러다 최근 관심을 갖게 된 게 조기 음악 교육입니다. 똑똑하게 만들어 준다는군요. 그래서 초2 딸한테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아 속상합니다. 싫어하더라도 두뇌 향상을 위해 계속 가르쳐야 할까요.

(애들 맘 이해 잘 하는 윤 교수) 조기 음악 교육으로 지능지수를 올릴 수 있다는 통설을 믿고 자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적지 않습니다. 한동안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인지 능력이 높아진다는 얘기가 돌았죠. 미국 통계를 보면 성인 80%가 이 얘기를 믿고 있고, 조지아주 주지사는 이를 토대로 모든 신생아에게 음악 CD를 무상 공급하기 위한 예산을 배정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유행에는 1993년 유명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연구의 영향이 큽니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들은 사람은 일시적이나마 길을 찾거나 퍼즐을 맞출 때 필요한 공간 추론 능력이 향상된다는 결과였거든요. 이때부터 모차르트 이펙트가 각광 받았습니다. 사실 이 연구에서도 인지 기능 향상이 15분 이상 지속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또 IQ(지능지수)는 아예 측정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자녀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합쳐져 모차르트 이펙트 유행이 탄생한 겁니다.

 최근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무작위비교시험이라는 연구 방법론을 활용해 음악 교육과 인지 능력과의 연관성을 살펴봤습니다. 6주 동안 어린이들을 음악 수업 받은 그룹, 시각예술 수업 받은 그룹, 그리고 아무 수업을 받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공간·길찾기 능력, 시각형태분석 능력 등을 실험해 보니 세 그룹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 이펙트를 입증하지 못한 것이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필요가 없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음악은 지능을 올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감성을 순화하고 위로해 주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음악을 머리 좋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콘텐트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하기 싫은 피아노를 단지 두뇌 향상을 위해 강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음악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생겨 오히려 음악과 멀어지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클래식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함께 듣고 공연장도 같이 가면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싶은 악기가 생길 수 있고, 그때 기회를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에 부모가 관심을 기울이면 마음을 엽니다. 그런데 음악을 단지 두뇌향상 도구로만 쓰려 하면 소통 등 음악의 여러 장점을 놓칠 수 있습니다.

02 비디오 게임으로 창의력 키운다?

그렇군요. 가요나 팝 대신 두뇌 향상에 좋은 클래식만 들려주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관심을 가져 보겠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더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중2 아들이 게임을 못하게 말렸더니 짜증을 많이 냅니다. 그 반응에 저 역시 기분이 상해 큰 소리가 자주 오갑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게임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네요. 게임은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혼란스럽니다.

시장조사전문기관인 엠브레인트랜드모니터 조사(2012년)에 따르면 학부모 81.2%가 게임 때문에 10대 자녀를 많이 꾸중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게임 때문에 자녀와 다툰 부모도 57.5%나 됐습니다. 재밌는 건 10대 자녀의 인식입니다. 10대 자녀 26.2%만 게임 때문에 꾸중을 들었다고 생각했고, 부모님과 싸운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33%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게임과 관련한 부모의 꾸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셈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게임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미시간 주립대는 2012년 12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비디오 게임, 핸드폰, 이 네 가지와 창의성과의 연관성을 조사했습니다. 이 중 비디오 게임만 많이 할수록 창의성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임 종류와 무관하게 말이죠. 그럼, 창의성 키워주려고 아이들한테 비디오 게임을 권해야 할까요.

 지난달 미국 소아과 학회지에 보다 세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10~15세 5000명을 대상으로 비디오 게임과 삶의 만족도와의 관계를 조사한 내용인데요. 하루 한 시간 이하로 하는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아이들보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으로 높았습니다. 게임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거죠. 반면 3시간 이상 한 아이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습니다. 삶의 만족도가 더 떨어졌습니다. 즉, 게임을 살짝 하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게 하면 좋지 않다는 겁니다. 자녀와 멀어질 만큼 게임을 무조건 막을 필요도, 그렇다고 창의력 키우는 도구로 활용할 필요도 없다는 결과입니다.

03 좋은 것도 자기가 원해서 해야죠

그렇다면 운동은 어떨까요. 우리 애들은 운동을 너무 안 하는데, 억지로라도 가르쳐 볼까 하거든요.

운동의 긍정적인 효과는 많습니다. 혈관을 건강하게 해 심근경색을 막아주고,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는 중풍도 예방해 줍니다.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꾸준한 운동은 항우울제와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우울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정신과에서도 약물 치료 이전에 운동 처방을 권할 정도입니다.

 최근 국제 신경과학 학술지인 ‘프론티어스 인 휴먼 뉴로사이언스’(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의 연구 결과는 운동이 머리를 좋게 해줄 수도 있다고 시사합니다. 9~10세 아동을 대상으로 유산소 운동량과 뇌 소통을 담당하는 신경섬유인 백질 구조와의 상관 관계를 조사했더니 운동을 많이 한 아동 뇌의 백질 구조가 더 촘촘하게 발달했습니다. 뇌는 각 부분이 신경섬유로 연결돼 신경망을 이뤄 활성화하기 때문에 백질 구조가 더 발달했다는 건 집중력과 기억력 등 뇌의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봐도 됩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할 게 있습니다. 좋은 것도 억지로 하면 동기가 떨어지는 인간의 청개구리 심보 말입니다. 그러니 운동도 아이들이 관심있는 걸 하도록 도와 주는 게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엄마와 함께하는 운동이면 더 좋고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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