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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조희연의 자식, 학부모의 자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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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사회에디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벼락스타다. 취임(7월 1일) 이후 줄곧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운도 좋았다. 남의 자식 덕에 교육감이 됐다. 야구로 치면 9회 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노 볼에서 만루 역전 홈런을 때렸다. 잘 친 게 아니라 유력 후보의 ‘슬픈 가족사’가 배구공만 한 공을 던져줬다. 6·4 지방선거의 최대 화제였다. 덕분에 수도 서울 교육감이 됐으니 남의 가족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조 교육감에게 기대를 많이 했다. 기득권만 누리려는 게으른 우파 교육계에 경종을 울렸다. 두 아들을 키워봤으니 학부모 마음도 잘 헤아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일단은 어설프다. 일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자율형사립고 폐지와 이념편향 인사 등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과연 이런 행정이 그의 고뇌에 찬 결정인지 의아스럽다. 문득 정치를 하려다 낭패를 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떠올랐다. 무상급식·혁신학교·인권조례를 전국 브랜드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를 인터뷰했을 때 단단하다는 느낌이었다. 옳든 그르든 소신이 뚜렷했고, 조직 장악력이 셌다. 반면 조 교육감은 약해 보인다.

 개인적으론 조 교육감을 잘 모른다. 지난 5월에 한 번 만났다. 진보 단일후보인 데도 지지도가 7%대에 불과한 때였다. 소탈한 교수(성공회대), 착한 아빠일 것 같은 인상이었다. “인지도가 안 올라간다. 힘들고 막막하다”고 했다. 나름 솔직하고 측은해 보여 “학부모 마음을 잡아라. 색깔을 내세우지 말라. 선거비용이라도 건지는 길이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교육감이 될 분을 평가절하했으니.

 그는 학부모들의 관심사였다. “우리 아빠 조희연을 도와 달라”는 두 아들의 덕도 컸다. 자식 잘 키웠다는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자사고 문제가 불거지자 곤란해졌다. “자기 자식은 외고(장남 명덕외고, 차남 대일외고 졸업) 보내놓고 남의 자식만 갖고 장난친다” “참 이기적인 아빠, 나쁜 교육감”이라는 학부모들의 송곳이 온몸을 콕콕 찌른다. 하지만 밀어붙인다. 모교인 중앙고도 폐지 대상 8곳에 포함시켰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진보 진영의 압력 때문일 것이다. 조 교육감 스스로도 8곳이나 폐지할 생각은 없었지만 전교조 등의 압박에 밀려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교육청 간부 전언). 조 교육감은 비서실장을 비롯한 교육청 내 고위직과 교육정책 자문단 113명을 대부분 친(親)전교조 인사로 채웠다. 자문단 교사 70명 중 56명이 전교조 소속이다. 서울 교육의 방향을 정할 인사들의 이념편향이 도를 넘었다. 그들이 훈수를 두며 조 교육감을 ‘로봇 교육감’ ‘얼굴 마담’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사실이라면 그가 자칫 ‘얼치기 좌파’ 교육감이 될 우려도 있다.

 조짐도 있다. 교육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교육감의 경계대상 1호다. 그런데 자사고 문제를 정치권으로 가져갔다. 야당 의원들과 간담회(18일)를 갖고 공동전선을 폈다. 자사고가 정치 쟁점화하는 순간이었다. 정치권을 잘 모르는 그의 뒤에 ‘리모컨’이 있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19일 법원이 전교조의 합법노조 지위를 항소심 선고 전까지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에게 또 다른 변수가 될 게 분명하다.

 조 교육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중심이다. 진영의 수압에 눌려 무리한 행정을 하고 여기저기 자리를 내주다 보면 서울 교육이 엉망이 된다. 자사고 문제도 소통이 우선이다. 밤샘농성을 하며 면담을 요청한 학부모를 계속 외면하면 진정성을 의심 받는다. 자사고 재평가의 본질은 불량학교를 걸러내는 데 있다. 강자인 교육감이 약자인 학교에 일방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곡해되다 보니 일이 꼬였다. 등록금은 세 배나 비싼데 수업의 질은 그대로인 곳부터 솎아내는 게 순리다. 그런 학교들이 있다.

 조 교육감에게 당부한다. 남의 자식 갖고 교육실험을 하지 말라. 116만 서울 초·중·고생의 아빠가 돼 보라. 남의 자식 덕을 보았으니 서울의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라. 그러려면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뚝심 있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작 빚은 엉뚱한 데 져놓고 왜 좌고우면하려는가. 명망 있는 사회학자의 자존심 문제다.

양영유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