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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세 증세, 죄(罪)인가?

중앙일보

입력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방침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세수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세금을 늘리려 한다는 우회 증세 논란에 고소득자가 아닌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늘어난다는 역진세 논란이 그 핵심이다. 담뱃값 인상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죄악세(Sin Tax)’ 과세가 강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죄악세는 직접세와 달리 조세저항이 덜하고, 국민의 건강을 챙긴다는 명확한 명분이 장점이다. 그 덕에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로선 항상 죄악세란 카드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죄악세의 증세 효과는 분명히 있다. 현재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을 2000원 올릴 경우 정부로선 2조8000억원 상당의 증세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죄악세를 강화해야 한다는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진 상황이다. 국민연금공단 최광 이사장은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연구에 실린 논문을 통해 “술ㆍ담배ㆍ유류에 대한 세율은 지금보다 적어도 2배 정도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뱃에 붙는 세금을 올린 효과는 확실하다. 1970년대 중반 45%에 달했던 흡연율을 22%(2012년 기준)까지 떨어뜨린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담배 한 갑당 가격은 평균 1만1611원이다.

죄악세 신설로 톡톡히 재미를 본 나라도 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여기에 세금을 매긴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캐나다의 경우 2013년에만 수십억 달러의 세금이 추가로 걷힌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술에 부과되는 주세 인상설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문형표 보건복지 장관은 지난 6월 “담배처럼 술에도 건강증진기금부담금을 부과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만치 않은 반론도 있다.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한 증세일 뿐이란 지적이 그것이다. (사)한국담배소비자협회는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대해 “명분만 그럴싸할 뿐 전형적인 서민 증세”라고 꼬집었다. KT&ampamp;G를 비롯한 담배 제조사들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상황이다.
죄악세를 올리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저항에 부딪혀 접었다. 정부는 2005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소주와 위스키 세율을 72%에서 90%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가 이에 반발하는 여론 탓에 주세율 인상안을 접어야했다. 이명박 정부도 2009년 주세율 인상 의지를 불살랐지만 ‘서민 증세’ 논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죄악세 막으려는 비용도 커져

세계적으로 죄악세 부담을 늘리는 건 일반적이다. 스페인 정부는 2012년 술, 담배 등의 소비세를 올렸다. 러시아와 호주 등도 지난해 술과 담배에 대한 과세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겪고 있는 미국 정부도 죄악세 강화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담배에 붙는 죄악세를 50센트만 늘려도 앞으로 10년간 800억 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행 10%인 주세도 30%로 늘리면 매년 250억 달러씩, 앞으로 10년간 2500억 달러가 더 걷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담배와 술뿐 아니다. 당분을 많이 함유한 음료에 대한 과세(온스 당 1센트)를 강화하면 한 해 150억~200억 달러의 세금이 늘어난다. 죄악세로 마련된 재원은 자금 부족 위기에 빠진 미국의 의료보험(Medicare and Medicaid)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민층이 죄악세의 주 부담자라는 주장에 대해선 “술이나 담배 소비가 줄면서 잠재적인 질병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모든 이가 죄악세 도입과 관련한 편익이 비용보다 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죄악세를 막기 위해 추가로 드는 비용을 고려해야 하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미국 내 탄산음료 등에 붙는 죄악세 부과를 막기 위해 들이는 로비 비용이 어머 어마하게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2009년에만 미국 내에서 죄악세 관련 로비에만 5700만 달러가 사용됐다는 분석도 있다. 죄악세 자체의 역진적 성격에 대해서도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물게 된다는 얘기다. 또 죄악세를 올려도 정작 흡연자를 비롯한 납세자들에게 그 돈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비난이 나온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 죄악세를 강화하는 나라는 꾸준히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2009년1월~2010년 4월 사이 미국 내에서 담배세를 올린 주는 22개 주에 달한다. 재정적자가 심한 캘리포니아주는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뒤 여기에 붙는 죄악세로 세수를 늘린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죄악세 자체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캐나다 정부는 1991년 담배 한 갑 당 3센트의 추가 부가세를 매겼다. 하지만 담배값이 오르면서 캐나다 국내에서만 50억 달러 규모의 담배 암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추산됐다. 캐나다 정부는 부작용을 인정하고 결국 1994년 이 세금을 폐지했다. 유독 담배 관련 세금이 센 영국에서 판매되는 절반 가량은 밀매된 담배란 분석도 있다.

교황 레오10세는 매춘업에 세금

죄악세의 역사는 깊다. 16세기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사치스러운 생활비를 마련하려 매춘업을 허가해주고 세금을 거둬들였다. 청교도 혁명 당시 영국의회는 국왕과의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1643년 맥주와 고기에 부과되는 세금을 올렸다. 러시아의 개혁군주인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에게 후진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턱수염을 깎을 것을 명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턱수염세를 부과했다.

흔히 ‘죄악세=술, 담배’를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죄악세의 종류도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 조지메이슨대 머캐투스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 36개 주에서 유흥세(Amusement Tax)를 걷는다. 매춘 여성 고용주에게 세금을 부과한 유타주가 대표적이다. 고기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연구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소 목축 등으로 인해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조치의 일부로 고기세(meat tax)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이 ‘네이처 기후변화저널(Journal Nature Climate Change)’에 게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목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의 8~18%에 달한다. 연구팀은 “고기세 부과가 소비패턴을 바꾸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뉴질랜드에서는 가축들에게 ‘트림세(burp tax)’를 물린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 국가들은 자동차에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해 세금을 물린다. 국내에서도 내년 시행 예정인 저탄소차협력금(자동차 탄소세) 제도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환경부ㆍ환경단체는 예정대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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