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사장에 제청된 정연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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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정연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이 KBS호(號)의 수장으로 결정됐다. 대통령 임명 절차가 남아 있지만 거부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노조 역시 "이사회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2일 서동구(徐東九)씨가 노조.시민단체의 반대로 취임 9일 만에 낙마한 뒤 21일 만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고문을 지낸 徐씨가 정치적 중립성 시비로 노조와의 갈등 끝에 물러난 뒤 현 이사회의 후임 선출 여부 등 고비마다 시끄러웠다.

이날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사들은 한결같이 "너무 지쳤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KBS의 한 이사는 "솔직히 그동안 각종 로비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로비뿐 아니라 괴소문도 수없이 돌았다. 이날 사장으로 임명제청된 정씨 역시 한때 개인적 문제로 자진 사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방송개혁을 주도하는 중책을 왜 마다하겠는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뒤에야 소문은 가라앉았다.

이날 11명의 이사는 추천받은 후보 중 기권 의사를 밝힌 백낙청 시민방송 이사장을 제외한 59명을 대상으로 모두 여섯번에 걸쳐 무기명 투표를 했다. 다섯번의 투표를 통해 방송출신 인사 한명과 정씨가 최종 후보에 올랐고 결국 정씨가 재적 과반수(6명)의 표를 얻었다.

그렇다면 이제 관심은 '정연주호 KBS'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거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참여정부의 이른바 '언론개혁'의 주요 축으로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평소 언론개혁에 관한 소신을 줄기차게 밝혀 온 정씨는 盧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몇 안되는 언론계 인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논설위원 시절 그는 칼럼에서 일부 메이저 신문을 겨냥해 '조폭 언론'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으로 알려졌기에 그의 역할이 단순히 공영방송의 최고책임자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가 KBS의 공영성 강화라는 일차적 목표를 달성한 뒤 일부 신문과의 긴장관계를 끌어가리라는 성급한 전망도 있다. 마침 노조를 중심으로 '매체비평 활성화'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어 이런 내부 요구와도 맞아떨어진다.

그는 이날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강력한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정신은 개혁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려면 언론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정씨의 임기는 박권상 전 사장의 잔여임기인 5월 22일까지로, 이후 새로 구성되는 KBS 이사회에서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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