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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 한류 영화, 일본서 '일류' 발돋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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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류의 주인공은 드라마다. 지금까지는. '욘사마' 열풍으로 열도가 들썩들썩했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고 또 봤던 일본팬들은 같은 배우가 주연한 영화 '스캔들'에는 인색했다. 일본 전역 300여개 관에서 떠들썩하게 개봉했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도 100만명을 밑도는 관객에 만족해야 했다. 일본에서 100만명을 넘긴 한국영화는 2001년 '쉬리'를 제외하면 지난해 12월 개봉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유일하다. 180억원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한국에서의 일본영화 위상도 비슷하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1차 개방으로 일본영화가 한국에 처음 상륙한 이후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로는 '러브레터'와 '주온'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성인물까지 완전 개방된 지난해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봉 편수는 30편으로 역대 최다였으나 '착신아리''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제외하면 외면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올들어 양국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 문제로 양국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가운데도 영화 교류는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에 대한 호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가 수출액을 기록하며 320만 달러에 팔린 이병헌 주연의 누아르 영화 '달콤한 인생'이 예정대로 4월 23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하며, 19일 개봉한 '번지점프를 하다'는 첫날 4만 장 이상 예매돼 한국영화로는 가장 많은 예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밖에 '우리 형''내 머리 속의 지우개''역도산' 등 지난해 화제작은 물론 '일단 뛰어''빙우''동갑내기 과외하기''피아노치는 대통령''지구를 지켜라'등 한류스타가 출연한 묵은 영화까지 올 상반기에 줄줄이 개봉한다.

매니어 층에 국한됐던 일본영화의 국내 진출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피와 뼈'와 '바이브레이터'를 시작으로 '69''지금, 만나러 갑니다'(각각 25일 개봉), '아무도 모른다'(4월 1일 개봉) 등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일본에서 관객.평단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작품들이다. 국내 예매사이트에서도 보고 싶은 영화 상위에 손꼽힐 만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흥행과 무관하게 일본은 최근 몇 년 한국영화의 가장 큰 시장이었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영화 총 수출액 69.3%를 차지했다. '달콤한 인생'(320만 달러), '내 머리 속의 지우개'(270만 달러) 등 한국영화는 최근 일본에서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판매 편수도 크게 늘어났다.

반면 한국에서의 일본영화 구매는 그리 많지 않다. 일본영화가 본격 개방된 2000년 이후 한해 20편 넘게 수입했지만 저조한 흥행 탓에 2002년 들어 10편대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18세 관람가 작품까지 개방되면서 30편으로 늘었으나 관객점유율은 2~3%대(애니메이션 포함)에 그쳤다. '착신아리''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공포영화나 최루성 멜로영화가 그나마 인기를 끌었다.

일본은 이런 역조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지난해 11월엔 일본 정부 주관으론 서울에서 일본영화 46편을 보여주는 일본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상업성 위주의 1960~90년대 작품을 관람료 1000원에 보여줘 '일본영화는 재미없다'는 한국 관객의 선입견을 털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한국영화는 일본에서 얼마나 흥행할까. 반대로 일본영화는 얼마나 한국관객을 끌어들일까. 부쩍 늘어난 영화교류와 민감한 외교관계 속에서 양국 영화의 성적표에 대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피와 뼈''69' 등 일본영화를 주로 수입해온 영화사 스폰지의 조성규 이사는 "당장은 아니지만 외교갈등이 장기화하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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