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없는 전·현직 관료 먹이사슬 얽혀 제 역할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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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장하성(사진·61) 고려대 교수는 별명을 잘 짓는다. 17일 KB금융 내분 사태를 논평하면서도 ‘작명 센스’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KB금융지주를 ‘민영화된 공기업’, 금융위원회를 ‘기획재정부 광화문분소’, 금융감독원을 ‘금융회사 감사후보 양성소’라고 했다.

 첫 책 『한국 자본주의』를 출간한 장 교수를 만났다. 그는 벼랑에 선 한국경제를 진단하면서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키워드로 해법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책을 써본 게 처음이다. 그냥 써내려 갔더니 1000쪽이 넘었다”며 “출판사에서 ‘이런 책은 없다’고 해 두 권으로 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 책엔 금융, 부문별 양극화, 세계화를 안 다뤘다”고 했다. 두 번째 책을 낼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책에 담기지 않은 내용을 질문했다.

 -KB금융 사태를 어떻게 보나.

 “정부가 주식 한 주도 없으면서 개입하는 관치경제의 끝을 봤다. 부끄러움조차도 잃어버린 전·현직 경제관료의 모습을 봤다. 철저하게 감독권을 행사했다면 (퇴직 후에도) 할 일이 많다. 눈치 보면서 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없다. 먹이사슬이 끊기면 생존력이 없으니 끝장을 보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 금융위도, 금감원도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문제는 무엇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유니버설 뱅킹이라고 은행과 보험, 증권이 한 울타리 안에서 영업하는 영국의 빅뱅 모델을 금융계에 들여왔다. 경쟁이 제한적이고 자본축적의 규모가 작은 한국엔 맞지 않았다. 과거 은행들이 합쳐지며 대규모화 했다. 국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국제 경쟁력이 있는 은행이 국내에 하나라도 있나? 없다. 아시아에서도 존재감이 없다. 우리가 잘못 안 거다. 소수의 대마불사 은행이 기득권에 안주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해법은.

 “한국은 세계 5~6위의 제조업 강국이다. 산업기반이 탄탄한 나라다. 금융시스템이 산업을 뒷받침하고 역동성을 만드는 단초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돈의 다양성이 없어서다. 은행 돈이나 저축은행 돈이나 투자은행(IB) 돈이나 같다. ‘안전’만 추구한다. 금융산업 구조 자체의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은행은 분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규모의 특성화한 은행이 많이 생겨야 한다. 경쟁적 구도를 복원해야 한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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