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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복덕방·복부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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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침9시가 넘어서도 집에 있으면 복부인이 아니다.』
78년 강남 땅이 부동산 투기로 극성스러웠을 때 복덕방가에는 이런 유행어가 나돌았었다. 부동산 경기는 그리고 재작년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도 이 유행어가 전혀 틀리지는 않다는 사실은 부동산업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수긍을 하고 있다.

<세금 추적도 어려워>
서울 반포동의 S부동산. 안에서 다시 쪽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내실에는 벽시계가 10시를 가리킬 때면 벌서 5∼6명의 부인들이 소파에 진을 치고 있다. 과천아파트가 입에 오르고 올림픽 유치가 호재로 떠오른다. 그러나 요즈음 상황에서 무리 없이 돈벌 수 있는 것은, 일반아파트의 분양, 주택청약예금통장을 사 모으는 것이다. 올 가을에도 내로라하는 몇 건설회사가 아파트분양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주인이 나타나 예금통장을 팔자가 「셋」나섰다는 소식을 전한다. 단골 김 여인이 가방을 열어 「도리」를 하겠다고 수표를 끊는다. 프리미엄 7백만원을 얹어 통장하나 가격이 1천2백만원, 셋이면 3천6백만원이다.
부동산 업계의 전언으로는 서울에만 현재도 3천명 가까운 활동성(?)복부인들이 있다고 한다. 복부인들에게도 물론 등급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자금 동원 능력 1천만원 내외가 대부분이고 인천이고 광주고 분양현장이나 모델하우스면 제발로 찾아가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또한 이들이다.
좀더 격이 높으면 구태여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앞서의 부인들처럼 출퇴근만 자가용으로 하면, 복덕방이 정보도 제공하고 관례대로 점심값서부터 일체의 비용을 부담한다. 알아서 모시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라고 예상이 곡 적중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이득과 손실을 평산하면 복부인들의 소득은 월6%라는 것이 부동산계의 공론. 한창 때는 소득이 월8%도 넘었다. 1천만원만 투자해도 한달에 60만원이 남는다. 외국에 비해 높다는 은행금리가 연20%선, 주식투자도 이선을 크게 넘지 못한다는 평이고 보면 아뭏든 매력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75∼76년 주공에 의해 잠실지구가 첫개발될 때, 자전거에 깃발 하나만 단, 「깃발부동산」도 유행했었다. 복덕방과 복부인의 공생관계는 이때부터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그 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복덕방은 현재 서울에만 2만여개에 이른다. 서울의 서초동·압구정동 신개발지역이면 어디나 복덕방이 등장했고, 상가의 노른자위도 복덕방의 차지였다.
보다 「벌이」를 적극화하기 위해 근래에는 이른바 부동산주식회사란 것도 등장했다.
서울 서초동의 A부동산은 아침8시면 20여명의 직원들로 50여평의 넓은 사무실이 부산스럽다. 매일아침 하루 일정을 점검하기 위한 전략회의가 열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전체회의, 때론 외부 인사를 초청, 세미나를 통해 부동산세법과 세일즈기법 등의 교육도 이뤄진다. 보유한 자가용만도3∼4대.
9시반쯤이면 2∼3명이 한조가 된 판촉 사원들은 신축아파트 모델하우스 등 제 구역을 찾아 흩어진다. 문어발처럼 손님을 끌어 모으고 매매를 붙인다.
지난 9월초 과천주공아파트가 붐을 이뤘을 때, A부동산이 성립시킨 매매거래는 하루 10∼15건. 거래 쌍방에서 10만원씩의 소개료를 받았다면 하루수입만도 2백만원, 이를 다시 판촉사원과 5대5로 나눈다 해도 하루1백만원의 벌이다.
필요 경비를 제한 것도 아니고 날마다 장이서는 것도 아니지만 아뭏든 대단한 금액이다.
부동산 소개업자에게는 세금이 비껴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금추적이 어렵기도 하지만 관인계약서 사용은 언제부터인가 흐지부지 됐고 대부분 과세 특례자의 지정을 받는다. 벌이가 많건 적건 세금은 연10만원을 넘지 않는다. 괴로움이 있다면 그래도 당국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반년에 한번쯤 문을 닫은 뒤, 상호를 바꿔 다시 영업을 하는 번거로움이다.
『얼마를 벌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돈을 어디 썼는지 알 수가 있읍니까』이말처럼 얼굴없는 돈은 입구도 분명치 않고 출구도 종잡기 어렵다.
그러나 돈 있는자가 돈 있는 티를 안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복부인 대열에 낀다는 J부인(43). 외모만 보면 그녀를 남대문시장의 어느 장사꾼으로 착각하기 알맞다. 물론 허름한 자기집이 있지만 그것으로 재산이 억대를 넘는다고 보기도 힘들다. 아들 둘에 과부인 그녀의 생활비는 한달40만원선, 돈을 늘리는 것이 재미라고 스스로도 말한다.

<10억대 복부인도>
복부인의 최상급으로는 10억대의 돈을 굴리는 전주도 열손가락에 꼽히고 빈손으로 10년동안 10억원 이상의 돈을 번 복덕방도 있다. 여의도의 L씨, E주택의 J씨, A부동산 K씨 등이 손꼽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조그만 건설업체를 세웠거나 투자자로 직업을 바꿨다. 돈을 벌고도 복덕방으로 남아있지는 않는다.
부동산으로 돈벌었다는 소문은 많지만 한편으론 실속 없는 부류가 많은 것도 역시 이 세계다. 복덕방업자들 스스로도 지적하는 것은 낭비벽. 눈치 볼 곳 많고 신세진 사람이 많은 만큼 술대접할 일도 잦다는 것이다. 영동의 유흥가는 한때 이들이 먹여 살렸다는 소문도 있듯이 하루 20∼30만원을 술값으로 써서는 남는 돈이 없다.
『제집 한간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1∼2억을 우습게 알고 남의 돈 무서운 줄 모릅니다. 사람 버리기 쉬워요. 복부인이라지만 그들도 사실 돈벌기보다는 돈 날린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다. 한 복덕방업자는 스스로를 포함해 복마전 같은 부동산 업계를 이렇게 결론지었다.<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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