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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8) 패션50년-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앞서 8회분에서 예문을 들었듯 당시의 모든 관계기사는 요즈음의 패션 기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막상 그 글을 쓴 필자 자신이 읽어봐도 웃음이 날만큼 극히 초보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가장 모던한 패션 정보인양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보면 모든 이들에게 생활화되어 있는 상식 이전의 기초지식 나열이 당시에는 바이블처럼 절대적 인위력을 가지고 받아들여졌던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만큼 몇명 선구적인 계층의 여성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라 해도 좋을 만큼 대다수의 여성들이 양장에 대해 백지상태였었다고
따라서 당시 지도급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자신의 양장점에 찾아온 고객들의 상담에 응하거나 신문·잡지의 모드란, 혹은 패션 쇼를 통해 자기의 창의력을 펴 보이는 일 못잖게 일반여성들을 계몽한달까 교육시키는 일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디자이너보다는 양장점 주인아줌마란 호칭이 더 쉽게 쓰이던 시절 양장에 관한 한 무지에 가깝던 이 땅의 여성들을 일깨우고 기초지식을 다쳐가기 위해서는 할 일이 태산같았다.
여성들이 바느질에서 멀어져가는 세태를 따라 요즘에는 신부감의 혼수품 목록에서도 제외된 재봉틀이 당시에는 주부들의 재산목록 제1호라고 할만큼 대단한 사람을 받는 존재였다.
지금 중년층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봉틀을 들려 손수 지어주신 옷을 입었던 정다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정에서 재봉틀을 이용해서 간편한 아동복이나 여학생의 교복 혹은 남자들의 노타이셔츠, 여성들의 원피스 등 실용적인 옷가지들을 주부들이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학생들의 재봉선생님이 되어서 줄자를 가지고 치수를 재는 법부터 원형 뜨는 법, 마름질과 바느질하는 법, 끝마무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글로 써서 가르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옷본에 맞는 옷감은 무엇이며 색깔이나 무늬는 어떤 것이 좋고 필요한 마수를 끊는데 돈은 얼마쯤 든다는 것까지 독자가 궁금해할 사항은 사소한 것이라도 빠짐없이 알려주려 애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일일이 도면을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을 다는 그 머리 아프고 잔손 가는 일을 귀찮은 줄 모르고 즐겁게 해낸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질만큼 그 일에 남다른 정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반에게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일은 역시 「복식연구실」이란 이름으로 여원에다 매달 연재했던 양장전반에 걸친 기본상식에 관한 글이 아니었나 싶다.
「액세서리에 대한 새 인식」 이니 「스카프와 모자와 백의 선택」이니 「액세서리로 여성미를 살리는 비결」이니 하는 제목이 보여주듯 구두나 핸드백·모자·허리띠 등 양장의상에 따른 부속품들을 선택하는 요령을 주로 많이 다뤘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듯 양장에 관한 한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이들을 상대로 하는 글이었던 만큼 무슨 옷엔 무슨 액세서리가 어울린다는 식의 단도직입적인 내용이 아니라 우선 액세서리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 종류에는 어떤어떤 것이 있다는 식으로 기초강좌부터 편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었다.
아뭏든 필자의 글을 열심히 읽은 여학생이 다음 낱 교실에서 멋지게 들리는 외래어를 섞어가며 나름대로의 패션강좌를 펴면 온 반학생들이 대단한 신학문이나 받아들이듯 눈들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정경이 당시의 여학교에서는 심심찮게 벌어졌던 모양이다.
참고로 1958년 5월호 여원에 실렸던 「액세서리에 대한 새 인식」 의 앞부분을 인용해 본다.
『액세서리라 하는 것은 부속품을 말하는 것인데 양장에서 쓰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복장의 보조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액세서리 없이는 복장의 완전을 기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 한복에 있어서도 예복이나 외출복에는 액세서리가 있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액세서리라는 말은 법률상에도 쓰는데 그 때에는 공범자라든가 공모자라는 의미로 쓰이며 주모자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즉 양장에 있어서도 이러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고로 양장이 변하면 액세서리도 변합니다.
예를 들자면 짧은치마가 유행될 때에는 자루가 짧은 파라솔이 유행하고 스커트가 길어지면 가지고 다니기에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양산자루가 길어집니다. 옷 길이가 차츰 길어지는 요즘 거리에 들고 다니는 양산대가 유난히 긴 것을 여러분은 보실 것입니다.
그러나 액세서리는 복장상 주역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조연자라고 하는 것이 본래의 역할이겠습니다. (하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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