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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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다닌 국민학교는 교실이 3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교실에 두 학년씩 수용하여 선생님은 번갈아 수업을 하셨다.
이런 학교를 계속 다니다간 좋은 중학교에 들어갈 가망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5학년이 되던 봄에 할 수 없이 마산으로 전학했다.
담임 K선생님 댁에 하숙을 하면서 통학했으나 그해 겨울 K선생님이 진주로 영전돼 가셔서 부득이 친척집으로 하숙을 옮겨야 했다.
그후 4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으나 K선생님을 한번도 만나 뵐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K선생님이 충무시에서 오랫동안 국민학교 교장으로 계시다가 정년 퇴직하시고 그곳에 눌러 살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년 여름 휴가 때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성묘 갔다가 오는 길에 충무시로 K선생님을 찾았다.
K선생님은 금년 76세로 퇴직하실 때 그곳 학부형·유지들이 마련해 드린 조촐한 집에서 사모님과 같이 노후를 즐기고 계셨다.
그날저녁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점에 내외분을 초대했다. 국민학교 5학년시절의 여려가지 이야기들로 화제의 꽃을 피웠다.
내가 K선생님에게 『요즘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고 물었더니 사모님께서 시내버스 안에 버려져 있는 담배꽁초를 줍는 것이 일과라고 하셨다. 꽁초 줍기를 3년째 해왔더니 충무의 시내버스 안에는 꽁초를 거의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뿐 아니라 꽁초를 버렸다가도 K선생님이 버스에 타시는 것만 보면 누구나 자기가 버렸던 꽁초를 얼른 집어서 감춰버린다는 이야기였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이 K선생님은 어느 모임에서나『여러분, 바닥에 침을 뱉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가 아끼는 충무바다에 침을 뱉으면 바다가 오염되지 않겠읍니까? 오염된 바닷물을 먹고 자란 고기는 언젠가 여러분의 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고 호소하신다는 것이었다.
꽁초까지는 몰라도 그 넓은 바다에 침도 뱉지 말라는 것은 이제까지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씀이었다. 사실 나는 그날 상오 배를 타고 아이들과 거제도 남단에 있는 해금강을 구경하러 갔다 선실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린 일이 있었다. 좌석 앞에 담배 재떨이가 붙어 있긴 했으나 벌써 꽁초로 꽉 차 있었고 선실바닥을 보니 담배꽁초들이 수 없이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속이 좀 메스꺼워 갑판에 나가 바다에 몇 차례 침도 뱉었다.
바로 그날 밤 은사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담배꽁초는 말할 것도 없이 의사가 된지 30년이 넘고 더구나 선진국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했다는 내가 바다에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침을 뱉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K선생님 앞에서 차마 얼굴을 둘 수가 없었다.
8순을 눈앞에 둔 국민학교 시절의 노은사로부터 이러한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을 말씀을 들으리라고는 정말 상장조차 하지 못했다.
신문지상이나 매스컴을 통해 애국을 부르짖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유명인사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애국애족의 참 모습을 이 K선생님에게서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훌륭한 은사가 아직도 계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의사>
▲24년 경남 의령출생▲연세대의대졸 ▲하버드의대수학· 의박▲연세대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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