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외교장관, 뉴욕서 북한 인권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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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문제가 2014년 유엔총회의 주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유엔총회(16일 시작) 기간 중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참석하는 북한 인권에 관한 국제 고위급 회의가 별도로 열린다. 특히 이 회의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 등 한·미·일 외교장관이 모두 참석하며, 유럽연합(EU)의 주요 외무장관과 제이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 등도 참석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1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간 중 북한 인권을 다루는 별도의 장관급 회의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관련국들이 현재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회의를 여는 건 지난 3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 내 수용소 등 인권유린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고, 유엔인권이사회가 북한의 인권침해 책임자를 국제사법 절차에 제소토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한 데 따른 연장선이다.

 케리 장관은 지난달 13일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연구센터에서 한 연설에서 “북한의 강제수용소(gulag)는 내일도 아니고 다음 주도 아니라 바로 폐쇄돼야 한다”며 “우리는 이 문제를 공개 거론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 나서는 만큼 올해 유엔총회에선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다. 결의안 초안은 일본과 EU 국가들이 마련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번 결의안에 인권침해 사범에 대한 처벌 요구가 담길 경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직접 압박이 될 수 있다.

 미 행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한 의지를 보이고 나선 건 유엔 등 국제기구가 정색을 하고 문제를 제기한 데다 상대적으로 북한 핵을 둘러싼 대화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워싱턴 외교가는 분석하고 있다. 미국인 3명의 북한 억류가 장기화되면서 미 행정부가 압박 카드로 인권 문제를 꺼내 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최근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로베르타 코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 등 15명의 미국 내 북한 전문가, 인권기구 인사들은 케리 장관에게 북한 인권회의에 참석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북한도 대응 외교에 나섰다. 인권에 대한 비판을 “날조” “계략”이라고 폄하하던 수세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 설명하는 등의 공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13일 이례적으로 자체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게재된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 준수 ▶고문받지 않을 권리 보장 ▶언론·출판, 집회·결사, 사상·종교의 자유 보장 등으로 북한 정부가 주민들의 인권을 수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어·중국어·스페인어·일본어로도 번역돼 있다.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9일 엘마르 브록 유럽의회 외교위원장을 만나 인권 문제를 논의한 데 이어, 12일엔 스타브로스 람브리니디스 EU 인권특별대표와 만났다. 1994년 북핵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강 비서가 유럽에서 인권외교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올해 유엔 안보리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결의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이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 북한인권특별위원장을 지낸 김태훈 변호사는 “북한 인권 문제가 세계적 어젠다로 떠오르며 북한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스스로 인권을 언급하며 국제 무대에서 뭔가를 해보려 한다는 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외교 총력전을 펼쳐 최대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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