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사온 국산 손톱깎이|외제만 좋은 줄 아는 아이들에겐 산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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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빠, 이 술도 외제 술이에요.』
장식품 같이 예쁘게 생긴 양주병을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펴보는 6살 짜리 아들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드디어 심각한 문제가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오고야말았다는 생각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화장품 이름도 영어도 아이들 과자이름도 영어다. 요즘은 그 흔한 티셔츠의 도안까지도 영어로 써야만 세련되고 멋져 보이는 것인지 온통 영어로 뒤범벅이 되고있다.
이 같은 영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으니 아들녀석에게는 꼬지람 글씨나 외제가 모두 좋은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외제 술이냐』며 신기해하는 아들을 보고 나는 자신이 그 동안 그 무언가에 소홀했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애들 아빠는 직장관계로 자주 외국엘 나아간다. 자연 이런저런 물건을 조금씩 사오게되고 그래서 외국산제품이 우리 집에는 더러 있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집에 있는 손톱 깎기가 잘 들지 않아 그이보고 외국에 나간 김에 한 개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이가 사온 손톱 깎기는 연한 풀색바탕에 에펠탑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제법 멋을 낸 것이었다. 시험삼아 세 아이의 손톱을 일제히 깎아보니 성능도 아주 좋았다. 아이들도 아빠가 사 오신 거라며 제법 신이 나서 손톱 깎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EIFFEL이란 글씨도 선명한 이 손톱 깎기가 나는 분명 프랑스 제품일거라고 생각했다.
디자인이며 빛깔, 성능이 그만큼 세련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손톱깎이의 뒷면을 우연히 보게된 나는 그곳에 KOREA란 단어를 보고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냉장고·TV등 큰 전기제품들은 일찍부터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잘한 생활용품까지 수출되어 외국의 조그만 잡화상까지 퍼져 있으리라 곤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손톱 깎기에 인쇄된 KOREA란 단어는 내게 큰 가능성을 던져준 것이기도 하다.『외국산 제품, 영어로 쓰인 상품명』에 대한 우리 아이들 의식을 손톱 깎기 하나로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는 그 같은·가능성이었다.
이 손톱 깎기는 우리 나라에서 만든 거야. 우리 나라는 이처럼 좋은 물건을 만들어 외국에 팔고, 그곳에서는 이 제품을 고급으로 알고있지.』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나는 적잖이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들 가슴에 자리 잡았던 외제선호사상이 이것으로 씻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또한 컸다.

<경기도안양시안양 4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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