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동심····어른들에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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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열두 살 된 초등학교 여자어린이가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밝고 티없이 자라야할 어린이가 자살이라는 최후의 길을 택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더 이상 서울에 있으면 나쁜 아이가 될 것』 이라며 미래의 자신이 두려워 죽음의 길을 택했다는 자살동기다.
결국 서울에 있을 바엔 죽음의 길을 택해 『영혼만이라도 시골의 평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부모와 두 딸뿐인 가정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이순희양 (l2) .
경제적으로도 별로 어려움이 없었고 학교성적도 상위권에 들이 어디로 보나 자살할 이유가 없다.
가족들은 약 보름 전부터 순희양이 『동네 골목길에 불량배가 많으니 빨리 시골로 이사가자』 고 졸랐으나 이사문제가 그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순희양이 죽음의 길을 택하도록 강요한「악의 그림자」 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어린이들의 신체적 성숙에 정신적 발달이 따르지 못해「사춘기 변화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식생활의 개선과 각종 매스컴의 보급으로 사춘기가 빨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지만 이에 비해 정신적 발달은 제자리를 걸어 사춘기에 나타나는 불안·우울증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사춘기에 동네불량배로부터 유혹 또는 희롱을 무방비 상태로 받았을 때 심리적 공포와 불안감을 느꼈을 것은 당연하다.
혹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혹시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리적 압박감에 무작정 현실을 도피하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순희양이 남긴 유서에서『시골에서 살았으면 이렇게까지 나쁜 아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한 것도 「시골」을 현실도피의 한 방편으로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으며 현실을 개척해 가야할 어린이들에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더 무거운 것 같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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