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의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
제 모습 땅 속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의 안 보이는 마음속에
놀 같은 방 한 칸 지어
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이기철(1943~ ) ‘나무 같은 사람’ 중에서
학창 시절에 시집과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 김춘수의 ‘꽃’,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김소월의 ‘못 잊어’를 밥 먹듯 외던 추억이 삼삼하다. ‘나도 문학소녀입네’했지만 세월과 생활 앞에 어쩌랴. 한동안 시를 잊고 살았다. 어느 날인가, 우연히 이기철 시인의 ‘나무 같은 사람’을 만났다. ‘어머!’ 눈이 번쩍 뜨였다. 시가 참 좋았다. 소녀 시절이 돌아온 듯 가슴이 싸해졌다. 요새 나무 같은 사람이 어디 쉬운가. 특히 나무 같은 남자 만나기 어렵다. 미남이나 얼짱은 많아도 믿음직스럽고, 가슴 넓고, 한마디로 나무 같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남자 만나면 그 옆에 서고 싶다. 묵묵히 말 한마디 없어도 세상이 환해질 것 같다.
아무리 돌아봐도 그런 사람, 자신을 땅속에 감추고 일 하는 뿌리 같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대신 수첩에 적어 놓고, 그리울 때마다 애송하게 됐다.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이 시인을. 그는 나무 같으리라. 강부자·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