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기초학력을 기르는 곳|교사 탓만 아닌「벙어리 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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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어교사만큼 어려운 교직도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가 바라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유능한 영어인재를 길러 내지 못하는 이유가 회화기능의 벽을 뚫지 못하는 교사자신의 무능에 있다는 비판에 늘 자책감을 느껴야 하니 말이다.
양심적인 영어교사라면 일종의 죄의식도 느끼고 심지어는 스스로를 위선자라는 자학까지 할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이렇게 선량한 교사일수록 실용기능을 높이기 위해 고심 참담 노력 해 온 사람들이다. 유능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한 교사의 다음과 같은 술회는 차라리 처량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중1부터 영어공부를 한지 25년, 고1부터 매일 라디오영어회화를 들어 온지 22년, 그리고 18년 동안 매일 10페이지이상 영어원서를 읽었으며 최근에는 8년 전부터 미국인 신부에게 영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는 15년 근속의 영어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듣고 읽기에 모르는 것 투 성이라 속수무책이니 어쩌면 좋을까요.
마치 자동차운전도 재대로 못하면서 남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위선행위를 계속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영어교사는 기능적인 영어를 유감없이 익혀야 하며 또한 그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회화능력이 없다 해서 이들을 백안·죄인시할 수 있을까. 이들도 현행교육환경의 희생자가 아닌가.
그렇지만 이들이야말로 한국의 어려운 교육환경 속에서 이만큼이라도 영어교육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노력과 공적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다. 학교영어 교육에서 당장에 써먹는 실용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실용능력의 잠재능력, 즉 전반적인 영어기초학력을 기르는 곳이 학교다.
모든 국민이 영어회화에만 능통할 필요가 있을까. 회화는 유창하지 못할 망정 외국의 선진문물과 학문을 수용할 수 있도록 외국어의 기초실력을 다져 주기 위해 오늘도 목청을 돋워 강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 교사에게 마치 우리의 영어교육을 죽은 교육, 슬모 없는 교육으로 만든 책임을 모두 뒤집어씌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오형태<전「신 영어교육」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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