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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꼭 오겠다던 님은 안 옵니다 … 한마디 연락도 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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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되도 안 오길래 레스토랑 번호로 전화 걸었더니 안 받아요. 5분 있다 개인 휴대폰으로 거니까 그제서야 받더라고요. 왜 안 오느냐 물으니 ‘깜빡했다’는 거예요.”

 “안 와서 전화했더니 급한 일 생겨 못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음악 소리랑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나요. 다른 레스토랑에 간 거죠.”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 회사 이름으로 된 예약이었어요. 그 회사 대표가 좋아하는 요리라며 없는 메뉴까지 해달라고 요구했구요. 그래서 평소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일부러 사와 준비했는데 예약 시간 직전에 취소했어요.”

 강남 유명 레스토랑 셰프들이 겪은 노쇼(no-show·예약 후 연락없이 오지 않는 것)와 황당한 취소 사례다. 사실 노쇼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식당들은 늘 당하면서도 아직 우리 사회에 정착되지 못한 예약문화나 개별 손님의 매너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연말 한 오너셰프가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예약의 중요성을 뻔히 아는 특급호텔이 빈번하게 노쇼를 유발해 식당에 피해를 준다는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앞으로 특정 호텔 컨시어지의 예약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밝힌 사연은 이렇다. 호텔의 단체 손님을 보내겠다고 미리 예약해놓고 당일에 갑작스레 취소하는 일이 빈번한데, 컨시어지는 손님 개인사정을 어떻게 아느냐며 나몰라라 해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다른 셰프들도 대놓고 얘기만 하지 않을 뿐 호텔 측에 불만이 적지 않다. 호텔이 투숙객을 받을 땐 신용카드 번호를 꼭 받고, 노쇼가 발생하면 하루치 숙박료를 전부 물리면서 호텔 밖 레스토랑 노쇼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급호텔 컨시어지가 이 정도면 노쇼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약 시간에 손님이 오지 않으면 레스토랑은 예약 때 받아놓은 번호로 전화를 한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많은 부류가 아예 전화를 안 받는 거다. 그나마 전화를 받은 고객은 하나같이 “깜빡했다”고 말한단다. 노쇼뿐 아니라 예약 시간 1~2시간을 남겨놓고 취소해도 레스토랑에 돌아가는 피해는 마찬가지다. 미리 재료 등을 다 준비해놓기 때문이다.

 파인다이닝을 하는 작은 레스토랑일수록 노쇼로 인한 피해가 크다. 이들 대부분 요리 가격이 비싸 예약 없이 그냥 레스토랑을 찾는 워크인(Walk-in) 고객 수가 적다. 결국 예약손님 수에 맞춰 식재료를 준비하기 때문에 노쇼가 벌어지면 고스란히 손해로 이어진다. 이윤화 『다이어리알』(레스토랑 가이드) 대표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은 노쇼 때문에 진절머리를 친다”고 했다. 지난해엔 후암동의 한 레스토랑 사장이 노쇼 고객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를 SNS에 공개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반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대부분 규모가 큰데다 예약 고객과 워크인 고객 비율이 따로 나뉘어 있어 노쇼 피해가 별로 없다.

 강민구 밍글스(청담동) 오너셰프는 “눈 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20석 규모 레스토랑의 저녁 매출이 180만~200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4명만 안와도 40만~50만원대 매출이 사라지고 미리 준비한 재료까지 못 쓰게 돼 그 손해까지 합치면 피해가 꽤 크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피해도 빼놓을 수 없다. 김대천 톡톡(신사동) 오너셰프는 “신나서 준비했는데 막상 손님이 안 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사실 피해자는 레스토랑뿐만이 아니다. 예약이 꽉 차 가고 싶어도 못 간 다른 고객도 피해자다.

 또 매장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도 한다. 예약 고객에겐 대체로 좋은 자리를 주기에 다른 고객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참 비워뒀는데 오지 않으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김은희 그린테이블(방배동) 오너셰프는 “예약석이라 비워뒀는데 결국 오지 않았다”며 “그 자리를 요구했다 결국 다른 자리에 앉은 고객이 왜 손님을 차별하냐며 항의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노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한 곳도 있다. 정지원 이꼬이(동부이촌동) 오너셰프는 노쇼 고객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노쇼한 고객 번호를 저장해뒀다가 해당 번호로 다시 예약전화가 오면 ‘자리가 없다’며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다.

 외국은 어떨까. 외식 문화가 발전한 미국·유럽 등에서는 항공권이나 호텔을 예약할 때와 똑같이 레스토랑을 예약할 때도 신용카드 번호를 남겨야 한다. 만약 고객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1인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나 코스 가격 절반을 결제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제부터라도 예약할 때 신용카드 번호나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 레스토랑에선 단체고객에 한해 예약금을 받고 있다. 서래마을의 프렌치 레스토랑 줄라이는 6명 이상이면 예상 결제액 10%를 예약금으로 받는다. 사찰음식 전문점 바루공양(견지동)도 10명 이상 예약시 10만원을 예약금으로 받는다. 저녁 예약이라면 당일 오전까지만 취소 여부를 알려주면 예약금은 돌려준다.

 오세득 줄라이 오너셰프는 “노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예약금을 받는다”며 “취소하더라도 미리 연락을 주면 대부분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셰프들은 “파인다이닝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예약금을 요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들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약을 약속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송정 기자 asitwe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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