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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궁금해서 본다지만 … 참수 동영상 공유 행태 ‘섬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1호 24면

미국의 타블로이드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아주 일관성 있는 신문인 것 같다, 그 후안무치함에 있어서 말이다.

SNS의 비인간성

지난달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했을 때, 뉴욕포스트는 IS대원이 희생자의 얼굴을 움켜잡고 목에 칼을 들이댄 참수 직전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1면에 실었다. 유족에 대한 일말의 배려 없이 선정성만 가득한 이 사진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이 신문은 2012년에 비슷한 물의를 일으켜 놓고도 또 이런 사진을 올린 것이니까.

그때 뉴욕포스트는 부랑자에게 떠밀려 지하철 선로로 떨어진 재미교포 남성이 플랫폼으로 올라가려 애쓰다 다가오는 전동차를 마주하는 장면을 1면 전면에 실었다(그 남성은 결국 사망했다). 그때 쓰디쓴 심정으로 칼럼을 쓰면서 <중앙선데이 2012년 12월 9일자 ‘타인의 고통은 나의 구경거리?’> 더 이상 그런 종류의 지면을 보지 않기 바랬다. 그러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뉴스 전달은 계속 되고 있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이슬람 무장단체 IS에게 참수된 제임스 폴리 기자의 부모. [AP]

그와 함께 참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고 공유하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꾸준히 있다. 10년 전 김선일 씨 동영상부터 폴리 기자에 이어서 며칠 전 IS에 의해 희생된 또 한 명의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틀로프까지.

참수 동영상뿐만이 아니다. 2012년에 ‘나이지리아 화형’은 국내 포털 검색어 상위에까지 올라갔었다. 나이지리아의 어느 마을에서 절도범으로 몰린 대학생들이 주민들에게 구타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진 끔찍한 사건인데, 그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그것이 국내 뉴스에 보도되면서,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에 그 사건 자체보다도 그 동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봤다는 사실에서 한 줄기 섬뜩함을 느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 대부분은 잔인하거나 냉혹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호기심에서 봤을 뿐이고 보고 나서는 후회했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한다. 그 호기심을 전혀 공감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의 마음에서 최우선이자 가장 단순한 감정은 호기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그 동영상을 보는 것이 과연 피해자에 대한, 인간에 대한 예의인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학적 쾌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본 것이리라. 하지만 피해자가 죽는 모습을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본다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로 변명해도, 결국 흥미를 위해, 호기심이 충족될 때의 일종의 쾌감을 위해, 살인 장면을 구경하는 것이 된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작가이며 문화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이 말했던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것으로 되고 만다.

IS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알기 위해 동영상을 본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텍스트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이 죽일 놈의 호기심’이다. 사실 이 테러리스트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 정보기관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영상은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동영상을 보는 것 자체가 폭력과 살인의 현장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삼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며, 죽은 피해자에 대한 모독, 나아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폴리 기자의 부모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아들의 참수 동영상을 보거나 SNS에 공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며칠 전 LA타임스 칼럼은 우리가 참수 동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실질적으로 그 제작자들의 인지도를 높이도록 돕는 것이며, 그들이 인지도를 위해 그런 짓을 더욱 많이 하도록 부추기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아무리 호기심이 원초적 본능에 가까운 기본 감정이라고 해도 때론 접어둘 필요가 있다. 그 호기심으로 선정적인 폭력의 영상에 탐닉할 때 우리는 점점 그것에 무감각해지고 더 끔찍한 것을 구경거리로 찾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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