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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정진기「매경」사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고 정진기 매일경제신문 사장은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 끝에 매일경제신문을 종합경제지로 키워온 입지전적인 인물.
지난16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요일에도 신문사에 나와 업무를 지휘하는 등『일요기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고인은 전남 나주군 노안면 금안리 450에서 2남중 막내로 태어나 독학으로 조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동란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6개월 동안 국민학교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6·25가 끝난 후 광주에서 인쇄소를 경영하다 실패, 상경했다.
빈털터리로 호남선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한 고인은 1년 동안 물지게도 지고 노동판의 잡부 등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다 59년8월 평화신문사 기자로 들어가 서울경제·대한일보·일요신문 등을 거쳤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못 다한 학업을 계속해 63년 말에는 전 우석대학의 전신인 국학대학 경제과를 졸업, 이듬해에는 모교에서 강사로 출강하기도 했다.
65년8월 매일경제신문사를 창간, 서울경제 등 기존2개경제지와 치열한 경쟁을 해오면서 67년3월 전국소비자보호운동을 전개, 소비자보호센터 설립·광고연구센터·세무연구소 설립 등 활발한 활동을 펴왔다.
고인은 독자로부터 신문이 배달이 안됐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야간당직자라도 반드시 신문을 직접 배달하도록 해왔는데 언젠가는 고인이 전화를 받고 밤늦게 모 아파트에까지 자신이 직접 신문을 배달하기도한 실천적 인물.
무남독녀(29)를 출가시키고 어머니 이판례씨를 모셔왔던 고인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전재산중 80%는 언론문화재단을 만들어 출연하고 20%는 사원들의 복지를 위해 쓰도록 함으로써 억척스럽게 모았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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