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죽음과의 끊임없는 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죽음과의 끊임없는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에 도전하는 생명의 의지는 끈질기고 한없이 강한 것이지만, 간혹 인생 가운데 패배한 사람은 생명의지를 상실,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자살의 비극을 빚어낸다.
자살은 곧 인생의 패배에서 오는 생명의지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존엄한 생명의 귀중함을 스스로 내어 던지는, 신에 대한 배반이요, 신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최대의 죄악인 것이다.
예부터 자살의 동기와 그 유형은 여러 가지로 알려져 왔다.
편견 된 자기만의 생각으로 속죄하는 일시적인 충동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누명을 벗기 위한 최악의 수단으로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도 있다. 모욕을 당했을 때 이에 항의하는 생각으로 자살하는 수도 있고, 스스로 명예를 지킨다는 순간적인 생각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같이 정사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곳에서는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자살해버리는 사람이 속출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죽음을 하찮은 게임처럼 착각한 듯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충격적인 자살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하찮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생명을 끊은 어느 학생의 경우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학업성적이 뒤떨어지는 것을 비관한 나머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한다.
어느 여고생의 경우는 학교에 낼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가난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어느 중학교 학생은 1년 전부터 정을 붙여 기르던 강아지가 죽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 한다.
청소년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떤 중년부인은 시어머니와의 사이에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함께 자살을 하려다가 아이들만 숨지게 한일도 있다. 얼마 전에는 네 모녀가 여자의 순결을 지킨다는 편협한 집착성에서 사회와 벽을 쌓고 광적인 자살참극을 빚은 끔찍스런 일이 일어났다.
갖가지 동기와 유형의 자살은 대개 어떤 경우건 인생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패배의식의 실망에서 오는 것 같다.
자살은 삶의 의지가 순간적으로 죽음과의 대결에서 패배한데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신이 주신 생명의 은총을 배반하는 죄악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미화될 수 없으며, 아무리 명예 때문의 자살이라 할지라도 좋게 평가될 수 없음은 물론, 그 자체가 죄악을 범하는 것임을 잊어서 안될 것이다.
자살에 대한 법률의 다스림은 우리 나라에서는 자살의 교사자나 방조자 또는 자살자의 부탁이나 승낙을 받아 살해한 행위는 범죄로 취급하여 처벌을 받도록 되어있다.
외국의 경우도 영·미법 계통에서는 자살을 범죄로 취급하여 미수는 경범죄로 취급하되 정사는 자살의 공범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자살은 아무리 법률로 다스린다해도 다스릴 수 없는 한계를 면치 못한다.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법률로써는 다스려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살의 대책은 정신적 자세확립의 문제로 올바른 인생관의 확립에 달려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절망과 실망과 낙망이 아닌 희망의 새 광명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어떤 역경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실수 있는 희망에 찬 생명의 의지를 다시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덧없이 무의미하게 이 세상에 보내어진 것은 아니다.
더우기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목적이 없이 아무런 사명도 없이 내어 던져진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신의 은총으로 태어났고 신의 거룩한 덕과 그의 큰 뜻을 이 세상에 널리 펴서 꽃피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하늘이 주신 성령의 내 마음과 기운과 힘을 다함없이 발휘하고 표현하도록 크나 큰 사명을 안고 태어난 우리인생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꾸준히 성실하고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 나가야 할 것이다.

<약력>▲1937년 황해도 연백 출생 ▲한양대 졸업 ▲신인간사 편집주간 ▲농협대 강사 ▲천도교 도정 <오익제(천도교 종무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