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잇감 만드는 책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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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살하고도 3개월이 지난 딸아이는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신발부터 찾는다. 쓰레기차총소리에 나풀나풀 손 흔들고 개짓는 소리에 멍멍멍 하는가하면 『싱싱한 농장 달걀…』하는 장사꾼 확성기 소리에 『워워워』하며 손목을 잡아끈다. 나무하나 없는 땡볕에서 아이와 씨름하다보면 저녁 지을 힘도 없다.
가끔 버스로 20분 거리인 입장료 1백원 짜리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서는 데 버스에서 번번이 자리 뺏는 것도 미안하고 기저귀, 손수건, 먹을 것 챙기는 일도 보통 일은 넘는다.
그래서 요즘은 힘도 덜 들고 아이의 지적 발달에도 도움이 될듯하여 장난감을 주어 실내놀이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적지 않은 가지 수의 장난감이건만 딸아이는 금새 실증을 내고 새로운 것만 찾아 애를 먹이는 것이다.
생각다못해 내가 직접 장난감 만들기에 나선 것이 약1주일 전. 우선 처녀시절 지금의 남편에게서 선물 받은 미국 책 『아이 장난감 만들기』를 꺼내 펼쳐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4층 인형 집」 「공연용 인형」 「놀이마당용구」 「휴일의 가면파티」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그러나 무엇하랴. 그 책의 배경이 되어있는 잔디 널따란 놀이마당도, 카피트 보드라운 놀이방도, 빽빽이 들어찬 집들 틈에 고작 열 몇 평을 차지한 내게는 그림의 떡이고 꿈나라이야기인 것을.
우리 실정과 너무 동떨어진 미국 책을 다시 덮어두고 이번에는 우리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광화문에서 종로에 이르는 서점가를 훑었다. 두 벽면에 가득 찬 어린이 책 중「만들기 택」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내용은 판지로 만드는 탱크·군함·제트기가 고작이었다.
시원하기가 이룰 데 없고 듣던 대로 없는 책이 없는 거대한 책방에 가서 아동·주부코너에서 예술코너로, 다시 농업·가정코너로 옮겨가며 직원들에게 묻고 물어도 헛수고였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호화롭고 현란한 장정으로 꾸민 전집류만 가득할 뿐 정작 아이들의 창의력 계발을 위한 놀이감 만드는 책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네 시간을 헤맨 끝에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아이 가진 부모라면 한 권쯤 꼭 필요할 책이 왜 아직 출간되지 않았는가를 생각했다. 아이들의 옷가지 수나 디자인·색채는 얼마나 다양한가. 그야말로 한다는 선진국제품에 손색이 없다.
아이들에게 입히는 옷만큼의 관심이라도 놀이감에 기울였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후진국(아니 개발도상국이라 해두자)과 선진국의 차이는 바로 이런 데 있는 게 아닌가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머리를 스쳤다.
쇼윈도의 최신 유행 의상을 찬찬히 훑는 엄마, 퇴근 후 술집에 몰려가는 아빠는 많아도 놀이감을 만들어주려고 책방을 뒤지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조기 교육」운운하는 거창한 구호이전에 낡은 옷가지, 헌 스타킹, 나무 조각으로 아이의 놀이감을 만들어보려는 부모들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난다면 내가 겪은 고충 같은 것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을까. <서울 종로구 숭인동 20의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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