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년기 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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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렁찬 기적소리와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기차가 그렇게도 멋지게 보일수가 없어 어린 시절 기관사가 되는게 꿈이었다.
22세 때인 56년3월 철도학교(6년 코스)를 졸업하고 수색운전사무소에 기관조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날듯이 기뻤다.
내가 철도에 들어 올때만 해도 기관차라곤 증기기관차뿐이었다.
증기기관차는 섭씨 1천5백도의 분화구가 눈앞에서임을 딱 벌리고 버티고있으며 섭씨 2백도가 넘는 각종 증기기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삼복더위 때 가파른 언덕이나 3∼4㎞의 터널을 운행하다 기관차가 힘에 지쳐 헛바퀴 돌 때는 그 열기에 혼줄이 났다.
얼굴과 볼은 붉게 익어버리고 작업복은 온통 땀 투성이가 되며 석탄과 땀이 섞인 내 얼굴 모습은 마치 구들장 청소부와 같았다.
그뿐인가. 기관고장으로 열차가 정지하게되어 육중한 연장을 들고 차 밑으로 들어갈 때는 더욱 죽을 노릇이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철마를 끌고 달리기 25년.
그동안 기관사의 근무조건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그렇게 우리 기관사들을 애타게 했던 증기기관차가 그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디젤기관차로, 다시 전기기관차로 산뜻한 모습을 나타냈다.
기관사도 기름 때묻은 작업복대신에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승무를 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기관차 승무가 육체적 고통을 안고 해야 했지만, 지금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신호주시와 전방장애물에 대비하여 초신경을 곤두세워 근무해야 하는 고통이 겹쳐 자칫 방심하면 엄청난 사고를 빚는 불행을 겪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경산열차 사고에서 보았듯이 기관사가안전 수칙을 자칫 소홀히 하면 엄청난 결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모두 명심해 고달픔 속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철마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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