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적인 나이 차(김영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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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인은 젊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폭군인가, 아니면 사회의 버림을 받아 마땅한 무력한 존재인가.
지난 4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국제노인문제심포지엄의 몇 가지 주제 가운데 참석 학자물의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문제다.
이 물음에 대한 윤리적인 해답은 들으나마나다.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차라리『집에 노인이 안 계시면 빌어서라도 모셔라』와 같은「그리스」의 격언을 듣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노년은 투철하고 원숙하며 고요하여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한「시세로」의 말로 대답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변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어떨까.
인간은 단순히 연령과 함께 늙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학은 이를 입증했다. 이른바「생리적인 나이 차」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적인 실험에 따르면 노쇠현상은 나이가 늘어감에 따라 개인차가 크게 난다. 즉 35세에서 8년, 45세에서 12년, 65세에서 16년, 75세에서 18년, 85세에서 20년이나「생리적인 나이 차이」가 생긴다.
아무리 나이가 45세일지라도 생리적인 기능으로 보아서 60새 가까운 노인인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비록 호적의 나이가 60대이지만 생리적으로는 40대의 활력을 지닌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젊다든지 늙었다든지가 이렇듯 단순한 나이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력한 노인으로 취급, 모든 일에서 물러나라고 사회적 압력을 받고있는 것이 오늘날 노인문제의 핵심이다.
이와 같은 과학적인 해답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학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한가지 노인문제에서 지적된 것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이른바 세대교체라는 이름아래 노인들이 정치적으로 희생되고 있는 현상이 부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생국이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후진국일수록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문제는 인권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최근 발표된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우리 나라도 노인인구의 급증현상을 보이고 있다. 생활사정이 좋아졌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령화추세에서 자칫 파생되기 쉬운 문제는 없는지, 「청년의 손과 행동」을 내세운 나머지「노인의 머리와 신중」을 경시하고 있지 않는지 우려된다.
우리도 한 때 세대교체를 외치며 노인들을 무력한 존재로 몰아붙였던 부끄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의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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