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의 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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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25일 제네바의 OPEC(석유수출국기구) 정기총회를 앞두고 저건파의 기둥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가격·생산량에 한치도 양보하지 앉을 것이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나왔다.
가격동결, 생산량유지를 선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의는 서서히 회복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세계경제에 크나큰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생산정책이 OPEC총회에서 그대로 관찰될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완화된 세계석유수급사정에 비추어 최소한 연내에 오일쇼크는 없을 것이 확실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석유상이 밝힌 대OPEC총회 전략을 보면 82년까지 현행유가를 유지하고 자국의 생산량도 공급과잉여부에 불구하고 일산 1천30만 배럴의 생산량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야마니」석유상은 『서방경제에 숨 쉴 틈을 주기 위해 유가동결을 하겠다』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으나 그 배경에는 현재 기능이 지리멸렬되고있는 OPEC의 재통일을 기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있다.
OPEC는 작년의 제2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가격이나 생산량 조정 문제에 있어 전혀 보조를 같이하지 못하고 있다. OPEC의 설립취지인 가격 카르텔의 역할이 정지되고 있는 상태다.
이처림 OPEC가 설립된 것은 이란·알제리 등 강경파들의 입김에 말려 온건파가 끌려 다니는 데서 비롯되고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동안의 세계경제 침체와 석유사정의 완화 등 제반 여건이 온건파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므로 OPEC의 복권을 강력히 실현시키겠다는 의욕에 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이라크 전으로 원유공급이 핍박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일산 9백50만 배럴이던 생산량을 1천30만 배럴로 늘렸다.
그런데 이란-이라크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양국의 수출량이 2백50만 배럴 수준까지 이르렀어도 증산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석유공급과잉상태가 되어 하루 1백만 배럴 내지 2백50만 배럴이 남아돈다. 그에다 서방주요 소비국들의 소비감소가 현저하여 재고마저 충분하다.
이처럼 공급이 늘어나자 그에 따라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스포트시장의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총회전에는 언제나 뛰게 마련인 현물시장가격이 지금은 미동도 안하고 아라비안 라이트 원유가 배럴 당 33달러(기준가격 32달러)에 머무르고있다.
이란-이라크전이 발발한 작년 가을에 배럴당 42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떨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산유국의 공시판매가격은 아니나 아무튼 판매가격이 인하되고 있다.
산유국이 멋대로 붙였던 프리미엄, 즉 할증금이 철폐되거나 내리고있다. 『공급과잉은 근본적으로 일부 회원국의 과잉생산 때문이다』(「칼데론」베네쉘라 에너지상)라는 불만도 있으나 사우디아라비아는 가격안정을 목표로 감산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의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가격등귀를 막는 대산을 밀고 나가는 한 강경파의 가격 인상론은 그 위력을 잃을 것은 명백하다.
그렇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작년 6월 알제 OPEC회의에서 채택한 「간주기준가격」(Deemed marker price=아라비안 라이트기준 배럴당 32달러, 이 기준에서 인상상한선을 4달러로 선정)을 현상대로 묶어두고 다음으로는 타산유국의 유가인상을 억제토록 함으로써 숙원인 통일가격체계를 재구축 하려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제네바총회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재통합에 한발짝을 내디딜지 어떨지 깊은 관심을 끈다.
그리고 소비국으로서는 OPEC내의 결속이 되든 안되든 유가의 급격한 상승은 없으면서도 원유공급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반갑다.
특히 제2차 오일쇼크로 격심한 인플레이션과 불황을 겪은 한국경제에는 때마침 머리를 들고있는 경기회복기미에 좋은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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