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만납시다」여성MC 질문내용 요령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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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TV가 컬 방송을 시작하면서 열렬히 즐기던 권투경기 시청이 싫어 졌다는 이들을 종종 본다. 붉은 피가 낭자한 선수들을 지켜보는 일이 섬뜩하고 잔혹 취미만 같아 흑백시절처럼 단순히 즐길 수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경산 열차사고보도를 컬러TV로 본 이들이 받은 느낌도 대 참사자체가 주는 끔찍함과 안쓰러운 마음이외에 무언가 권투팬의 기분과 유사한 것이 있었다.
피투성이 중상자와 참혹하기 짝이 없는 시신들을 마치 피 냄새까지 풍길 듯 생생하게 잡은 카메라의 컬러화면들은 그 리얼함이 지나쳐 도저히 바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
워낙 어처구니없고 엄청난 사고여서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성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는 보도진의 의도를 모르는바 아니다.
지옥 같았을 사고현장에 나간 카메라맨들이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고 보다 충격적인 장면을 찾아 포커스를 맞춘 투철한 직업의식도 높이 사고싶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흥분」이 일단 편집과정에서는 충분히 여과되어 보도되어야하지 않을까.
우리네 TV 토크쇼의 간판격인 『9시에 만납시다』(KBS 제2채널)가 시청률이 상당한 것만은 틀림없을 듯하다.
웬만큼 TV를 보는 측끼리 모인 자리에서 어제오늘 가장 빈도 높은 화제 거리라면 바로 『9시에 만납시다』MC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평.
문제는 물론 여성MC다. 처음 얼마동안은 서툰 것이 연하리라 접어두고 보아주던 이들도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는 그녀의 「면모」에 아연실색 하게되는 일이 너무도 잦은 때문.
그녀의 본업인 연기자로서는 다소 꾸밈이 있기는 해도 그런 대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평소 쇼프로그램 같은데 출연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질문을 받아도 얼핏 현학적으로 둘리지만 실상은 소녀들의 업서 사연처럼 미사여구의 나열일 뿐 알맹이 없이 알쏭달쏭 하기만 한 답변을 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스스로가 질문자의 입장에 서고도 그 현학취미의 요령부득한 질문을 던져 상대방을 당혹시키기 일쑤다.
얼마 전 조선조 광해군과 덕온옹주의 의상을 수집했다는 석주선 교수에게 『그분들을 실제로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반문한 일은 그대표적인 예.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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