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퇴역했으면 방 빼" … 중국군, 노병과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중국 동남 연해안 경비부대의 연대장인 저우타오(周韜)는 최근 보름간 선글라스를 쓰고 부대를 지휘했다. 작고한 노병의 딸에게 눈을 맞아 멍이 들어서다. 사연은 이렇다. 저우는 10여 년 전 이 부대에서 공병 장교로 근무하다 퇴역한 뒤 몇 년 전 사망한 황모씨의 유족들에게 황씨가 군 복무 당시 받았던 국가 주택을 반환하라고 요청했다. 집을 두 채 가진 황씨의 딸은 이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줘 임대료를 받고 있었다. 저우가 황씨의 딸을 찾아가 “국가 재산이니 반환해야 한다”며 압박하자 딸은 갑작스레 주먹으로 그의 눈을 때렸다. 황씨의 딸은 “평생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에서 고생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집을 내놓을 수 없다”며 버텼다. 해방군보와 남방주말 등 중국 언론이 최근 전한 얘기다.

 중국군이 요즘 퇴역 군인이 복무 시 거주했던 군 주택을 돌려받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와 총정치부 등 군 지휘부는 5월 말 공동으로 퇴역 장병이 군 복무 시절 받은 모든 주택과 차량·인력을 관련 규정에 따라 8월 말까지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시문을 군 부대에 하달했다. 이 지시문에는 10월 말 군 감사반을 편성해 반환 현황에 대한 조사를 벌여 실적이 좋지 않은 부대장은 문책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군 개혁의 일환이다. 이 때문에 현재 중국군 부대에서는 자체 단속반을 편성해 퇴역 노병들의 ‘방 빼기’ 작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반환 대상인 주택의 대부분이 지휘관 출신이거나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장병이어서 거부할 경우 강제 집행이 어렵다. 특히 상당수 퇴직 군 간부 가족은 이미 주택을 빌려주거나 전매한 경우까지 있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법에 호소하기도 힘들다. 90년대 들어 군 부대가 법원에 소를 제기해 군 주택 반환을 추진했지만 법원은 ‘인민해방군 부동산 관리조례’에 의거해 민사상 심리 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하고 행정 조정을 통한 해결을 권하고 있다.

 매년 퇴역한 중국군 장병은 전체 병력의 10% 정도인 20여 만 명. 이들 중 퇴역 후 주택을 반납한 비율은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중국 군은 매년 새로운 기숙사나 관사 건설비로 수십억 위안을 투자하고 있다. 중군군 부대의 ‘방 빼기’ 단속반원인 장칭인(張淸印)은 “ 군 선배들을 대상으로 집을 비우라고 독촉하고 있는데 정말 못할 짓이다. 그러나 준법과 군 개혁 차원에서 강행할 수밖에 없어 물리적 충돌이 자주 발생하며 군 개혁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