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문 여니 줄줄이 해외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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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광역시·도와 시·군·구 의원 및 지방 교육의원들이 하나 둘 해외연수를 나가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다.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지난달 새 의회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안 돼 생긴 움직임이다. “선진 지방행정을 배워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취재의 연수지만 일부는 관광 일정이 포함돼 눈총을 받고 있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은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중국 홍콩·선전 등지를 다녀왔다. 이곳과 제주도의 국제학교를 비교하려는 목적이었다. 규정에 따라 의원 1인당 경비 269만원 중 200만원을 제주도가 부담하고, 의원들은 69만원을 댔다. 일정 중에는 마카오의 리조트와 성바오로 성당 같은 휴양·관광 명소 방문이 포함됐다. 제주도의회 측은 “마카오에 간 것은 관광특구로서 제주도가 본받을 점이 없는지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제천시의회는 10월 6일부터 5일간 싱가포르로 해외연수를 간다. 광주 광산구의회는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나 동남아 지역을 가는 것을 검토 중이다. 광산구의회 관계자는 “회기가 없는 때를 골라 일정을 잡았다”고 밝혔다. 광주 서구와 북구 의회도 9월 중에 하반기 연수 일정을 확정할 방침이다.

 경남 창원시의원들도 10~11월 중에 서유럽이나 동유럽 쪽으로 가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 기획행정위원회 의원 10명과 경제·복지·문화·여성위원회 의원 11명이 8~10일 일정으로 해외연수를 검토 중이다. 창원시의회는 9월 중순까지 연수계획을 확정지을 방침이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는 대부분 지자체가 보장하고 있다. “나가서 직접 보고 배우라”는 의미다. 1년에 한 차례 200만원까지 비용을 지원하고, 그 이상은 지방의원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게 보통이다. 지원은 외유가 아닌, 공무상으로 나가는 연수일 경우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구분이 애매하다. “관광제도를 살펴보겠다”며 한국보다 지방행정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동남아 등지로 연수를 가는 경우다. 연수에서 돌아온 뒤 보고서 작성을 지자체 공무원에게 맡겨 물의를 빚는 사례도 있다.

  이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연수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지방자치 단체들도 있다. 경남 거제시가 대표적이다. 거제시의회는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 해외연수지와 방문 목적을 적은 사전 보고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연수를 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연수를 다녀온 뒤에는 의원 1인당 A4 용지 18쪽 이상의 보고서를 내도록 했다. 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지원받은 연수비를 물어내야 한다.

  그러나 거제시처럼 해외연수가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규정을 만든 지자체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규정에 보장된 지방의원들의 권한이라고 하지만, 재정이 달려 허덕이는 마당에 꼭 해외연수를 가야하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경호·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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