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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알몸 여인과 바바리맨 검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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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추적추적 비 내리던 지난 주말. 폭이 좁아 사람과 차가 뒤엉켜 지날 수밖에 없는 좁은 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여성이 길을 따라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간다. 차량 통행이 적은 길도 아니다. 창문을 열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사람, 그 장면을 놓칠세라 뚫어지게 바라보다 접촉사고 낼 뻔한 사람.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차를 길에 바짝 붙여 세우고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그녀는 길 옆 큰 도랑에 머리를 처박고는 강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도망갔다. 119 신고를 했고 경찰, 소방차, 구급차까지 왔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다. 수퍼모델만큼이나 예뻤던 그녀가 정신질환 환자란다. 흐리고 비 오는 날에는 세로토닌이란 행복호르몬 때문인지 우울증 걸린 사람들의 기분이 묘해진다더니.

 집에 돌아와 틀어놓은 TV. ‘CCTV의 남성과 검사장은 동일 인물. 대로변에서 5차례나 음란행위를… 그는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치료받겠다고 병원에… 공연음란죄는 경미한 범죄로 여겨 대부분은 벌금형’. TV 속 패널들은 경쟁이나 하듯 떠들어댄다. ‘성적충동을 억제해서 생긴 불안감이나 그분이 받으셨을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뇌질환이 있으시거나… 일단 치료를 받으시는 게 급선무’. 검사는 평소에도 영감님으로 불리더니 죄인이 되어도 높임말을 듣나보다. 경미한 범죄? 어디 부러지고 피를 흘려야만 큰 상처인가.

 아홉 살 때 바로 코앞에서 본 바바리맨의 ‘커다랗고 흉측했던 성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쉰 살 넘은 후배가 있다. 그때 그녀는 그것이 몸에 달린 무슨 무기인 줄 알았단다. 성격은 쾌활한데, 성에 관한 한 ‘그 물건, 그 짓거리’하며 펄펄 뛰며 흥분하는 그녀. 바바리맨 범죄는 결코 경미한 게 아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대로변에서 음란행위를? 신고기피 특성상, 어쩌면 이미 백 번 천 번 그 짓을 했을지도 모르고, 그걸 본 많은 여학생들 머릿속에 벌써부터 왜곡된 성이 똬리를 틀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다른 흉악 성범죄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할 수 있는 노출증. 그래서 무섭다. 아이를 대상으로 성욕을 느끼는 소아기호증이나 노출증이나, 똑같이 질병이다. 치료도 필요하지만, 지은 죄만큼의 처벌은 필수다.

 휑한 눈으로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한 여자나, 여학생들 오가는 곳에서 성기를 드러내고 음란행위를 하고 나서 신분까지 속이고 죄를 부인한 남자나 모두 공연음란죄인 건 맞는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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