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멋들어진 말들이 만발하는데…|평론가의 눈에 비친 「정치1번지」의 합동연설회장|홍사중<문학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장날이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즐비하게 늘어선 자가용차가 가도의 양쪽을 메운다. 정치1번지답게 성대한 장이다. 음료수 파는 아줌마가 있고, 사진 한 장 찍으라고 졸라대는 사진사가 있고…. 인파를 헤치고 연단 가까이 다가가자 어느 당원인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제지한다.
새시대라는 데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응달에 올라앉은 할머니들의 한복이 한결같이 호사스럽다. 고도성장은 그곳에만 몰려 있는 것일까. 심심해서인지 한 할머니가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장날에 춤이 없을 수는 없겠다. 또 한구석에서는 박수부대가 박수연습을 하고 있다. 마침 후보가 들어오자 그쪽 박수부대가 몰려들어 요란한 박수를 터뜨린다. 두손을 번쩍 들면서 후보가 함박 같은 웃음을 띄운다. 과연 정치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나 낯간지러워하지 않을 만큼 배짱도 있고 굼튼튼해야하는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은 임기가 몇 년이죠? 곁에 서있는 한 영감에게 물어본다.『대통령도 7년인가 한다니까 적어도 한 6년은 하겠지요』이렇게 대답하는 그도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가보다.
한 나라의 정치는 정치가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러나 정치란 정치가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할 수 없다. 그만큼 추악한 게 정치다. 이런 이율배반 속에서 유권자들이 배운 것은 적당한 무관심과 무감각이다.
그게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한 후보가 『권력의 독주를 막겠습니다』고 외친다. 또 한 후보가 『불량정치를 물리치겠다』고 약속하고 또 다른 후보는 『복지사회의 건설』를 역설한다. 모두가 좋은 말들이다. 아마 전국을 통해 어느 유세장에서나 이처럼 멋들어진 말들이 만발하고 있을 게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토록 좋은 말들을 하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데 왜 이 나라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액면대로 좋아지지 않는 것일까.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저는 투쟁하겠습니다.』어느 후보가 절규한다. 뭣에 대하여 어떻게 투쟁하겠다는 것일까. 지금까지 투쟁하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이제부터 투쟁하겠다는 것이며 지금까지는 투쟁할 거리가 없었다는 것일까.
『저 사람 참 말 잘하는데.』
한 사람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대구를 한다.
『아니 우리나라에 말 못하는 사람도 있나?』
30분의 제한시간이 지나 확성기가 끊긴 다음에도 연설을 계속하려다 하는 수 없이『기호는 ×번 ×××를 잊지 마십시오』라고만 외치고 내려오는 후보도 있다.
할말이야 많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도 많다. 그러나 그게 모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말에는 이젠 넌덜머리가 난 유권자들이다. 공약에 놀아나기에도 지친 판이다. 그들은 새삼스레 뭔가 시원한 소리를 들으러 올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비록 연설회가 끝난 다음에 받을지도 모르는 푸짐한 대접에 마음이 들떠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은 그저 구경하러 온 것일 뿐이다. 아무리 모든 후보들이 한결같이 『유권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겠습니다』하고 허리를 굽신거려도 우쭐해질 유권자는 아마 이제는 없다.
언제나 국민이 등진 곳에서 정치가 꾸려져 나가고 역사가 이뤄져왔다. 그런 「패턴」이 천지개벽이라도 없는 한 바뀌어질 턱이 없다고 유권자들의 오랜 뼈저린 체험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종로 중구의 유권자수는 모두 33만 7천 2백명. 그것도 정치의식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해서 정치1번지가 되었지만 오늘의 합동연설은 이들로부터 외면당한채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들으나마나 하다는 생각들에 모두가 젖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결석재판을 마쳤다.
표결은 끝난 것이다. 그러니까 유세장에서의 대결은 아무 소용도 없다. 그저 형식일 뿐이다.
그러잖아도 세명째의 연설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대부분의 청중은 아예 연단에 등을 돌린 채 삼육오오 짝지어서 잡담들이다. 꼭 파장 때의 분위기와 같다. 모두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말의 성찬은 계속 된다. 딱한 것은 제비를 잘못 뽑아서 후반에 연설하게 된 후보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집중력은 1시간을 넘기가 어렵다. 1시간을 넘으면 우선 발이 아파서 주저앉고 싶어진다. 2시간이 넘으면 화장실 생각이 난다. 하품도 나기 시작한다. 비슷한 얘기를 되풀이 듣자니 슬며시 시간이 아까운 생각도 든다. 그리고는 역정도 난다. 마지막 차례가 돌아올 무렵에는 연사나 청중이나 기진맥진해진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고 서서 듣고 있는 대중이 있었다. 그들은 분명 일당에 동원된 박수부대는 아니다.
연사석 쪽으로 굳이 들어가겠다는 사람들을 제지하던 한 청년이 동료를 바라보며 혀를 찬다. 『수준이 낮아서… 남 수준이 낮든 높든 나라의 주인이요, 오늘의 주심이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선량들의 얼굴이 몇해마다 뒤바뀌어도 언제까지나 바뀌지 않는 게 국민이다.
비록 몇년에 한번 선거때만 상좌에 올라앉지만 허수아비는 아니다.
어느 후보는『나는…』한다 어느 후보는 겸손하게『저는…』한다. 모두「나」에서 시작해서「나」로 끝난다. 자아의식이 그만큼이나 강해야 정치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해낼 수 있다는 것일까. 청중은 그저 꽃놀이 패를 즐기고 있는 기분일 뿐이다.
『대중의 투표용지가 모든 것에 판결을 내리는 오늘날에는 결정적인 가치는 순전히 최대다수「그룹」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둔한 사람들, 혹은 경신자의 군집이다』. 다름아닌「히틀러」의 말이다. 독일의 비극은 그런「히틀러」에게 협력을 쉽게 맡겨버린 데서 빚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오늘의 우리는「우둔」한 국민도,「경신자의 군집」도 아니다.
국민의 참다운 소리는 유세장 안에서는 듣지 못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정말로 호소하고 싶다면 그것 역시 유세장 밖이어야 한다. 그런 줄 아는지 모르는지 목청을 가다듬고 외치는 후보들이 정말로 국민의「가슴속」을 살펴주어야 할 것만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