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아파트」 놀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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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네살박이 우리집 개구쟁이가 세발 자전거를 대문 안으로 쿠당탕 밀어 넣으면서 들어오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또 생트집이다.
『엄마 우리도 「아파트」로 빨리 이사가 응!』
또 「아파트」놀이터에서 쫓겨온 모양이다. 서민주택으로 들어찬 이곳으로 우리가 처음 이사올 때만 해도 동네 한 가운데 농원이 하나있었다. 주로 정원수의 재배지인 이곳 농장 문은 항상 개방되어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는 농장이 유일한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가파른 언덕을 타고 오르며 꼬부랑 오솔길을 돌고 돌며 신나게 놀았다. 농원 주인은 아이들을 쫓으려 하지 않고 아이들도 별로 농작물을 해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참으로 공기 맑고 아이들 놀기에 좋은 곳으로 이사 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그 농원 자리에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졸지에 놀이터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은 「아파트」가 완공되자 「아파트」주민 전용놀이터로 몰려들었다.
「아파트」측은 외부의 어린이들의 놀이터 출입을 금지했다. 동네 아이들은 놀이터 울담 밖에서 신나게 노는 「아파트」어린이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다가 경비원 아저씨가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몰래 숨어 들어가다가 들켜서 혼찌검이 나고 쫓겨오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이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같이 놀이터 주변을 맴돌며 경비원 아저씨 눈치만 살피곤 했다. 거침없이 마냥 놀기를 바라는 꼬마들에게 남의 눈을 피하고 눈치만 보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아프고 「아파트」측이 조금은 야속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변문자(서울 동작구 상도2동 204의77호 24통6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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